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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라이터를 켜라 / 작가 박정우 "웃음뒤의 풍자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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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라이터를 켜라 / 작가 박정우 "웃음뒤의 풍자를 찾아보세요"

입력
200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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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17일 개봉)의 한 장면. 부산행 새마을 열차에서 조폭들이 안하무인격으로 설치는 것을 보다 못한 승객이 “당신 이 열차 전세 냈어”라고 항의하자, 어설픈 조폭 두목(차승원) 왈 “집도 월세 사는데 기차를 어떻게 전세 내.” 작가 한성우(33)의 재치는 대사에만 있는 게 아니다.캐릭터 설정에서 구성까지 그의 시나리오에는 웃음이 흥건하다. ‘주유소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그리고 촬영중인 ‘광복절 특사’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웃기는 작가’가 아니다. 충무로에서 12년 동안 굴렀다. 대학(외대 신방과) 1학년 때인 1989년 공부 팽개치고 정 붙일 곳을 찾아 영화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 ‘체인지’ 조감독까지 거쳤고, 1996년 ‘마지막 방위’로 작가에 데뷔해 ‘키스할까요’ ‘선물’ 같은 멜로물까지 8편이나 썼다. 그 바람에 대학은 10년 만에 졸업.

꿈은 물론 감독이다. 그의 말을 빌면 한국에서 감독이 되는 방법은 세가지. 학벌(유학)로 밀어 부치거나, 시나리오로 인정받아 어느날 ‘내가 하겠다’고 선언하거나, 그야말로 ‘짠밥’으로 올라가거나. 첫번째는 공부하기 싫어, 마지막은 기약이 없어 두번째 것을 선택했다.

- 코미디를 좋아하는 이유는.

“취향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듣거나 봐주게 하려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영화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유머는 어디서 나오나.

“막말로 나부터 웃기는 놈이다. 진지한 것, 심각한 것, 무거운 것은 싫다. 실제 말하는 습관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생활에서나 영화에서 한번도 웃기는 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의 수준, 그것을 3류라고 한다면 할 수 없다.”

- 소재는 어떻게 찾나.

“어느날 문뜩 생각나는 한 구절이나 누가 하는 한마디로 연상작용을 한다. ‘주유소습격사건’은 ‘주유소를 털러간 아이들이 돈이 없자 기름을 팔았다’는 얘기를 듣고 쓰기 시작했고, ‘라이터를 켜라’는 아무나 쉽게 가져가는 일회용 라이터를 보고 ‘그 때문에 큰일이 벌어지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 이야기를 만드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특별히 취재도 하지 않는다. 방에 쳐 박혀 아는 만큼만 쓴다. 첫 장면을 쓰고 나면 인물도 목표도 나온다. ‘라이터를 켜라’에서는 관객들이 봉구(김승우)가 마지막에 피는 담배 맛이 정말 좋겠다고 공감한다면 성공이다.”

- 영화가 너무 가볍고 이제는 구성과 인물설정에 자기복제까지 엿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솔직히 인정한다. 사실 ‘신라의 달밤’을 끝으로 그만 쓰고 쉬며 감독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동안 혜택을 받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했다. ‘나도 물들었구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작품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혔다고 자부한다. 농담만 한다고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게 아니다. 영화 밑에 깔아놓은 ‘부당한 권력, 억압의 통쾌한 뒤집기’를 발견하면 더 좋고, 아니면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 감독으로 데뷔는 언제하나.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모든 장르를 통합한 ‘간다, 쏜다, 난다’(제작 필름마니아)란 작품이다. 연말쯤 촬영에 들어간다. 시나리오 세 편만 쓰고 감독하려 했는데 벌써 8편이나 썼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 '라이터를 켜라'

소설가 박완서씨가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수필집을 낸 적도 있지만 우리(소시민이라 불러도 좋다)들은 정말 왜 그렇게 작은 일에 분개할까.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나날이 달라져도 여전히 사그러들 줄 모르는 부정부패와 가난한 자를 짓누르는 부조리한 제도에는 침묵하면서 주변의 사소한 잘못에 길길이 화를 낼까.

속 좁고 용기 없는 소인배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힘 센 놈들의 온갖 부정과 위선, 있는 놈만 위하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분통이 터지고 피해를 보고 있는데, 그것이 이런 사소한 것까지 그냥 포기하면 나는 뭔가 하는 생각에?

‘라이터를 켜라’(감독 장항준)는 바로 그 작은 일에 분개하는 한 남자의 사건을 통해 우리사회를 통쾌하게 풍자한다.

300원짜리 일회용 라이터. 남의 것으로 담배 불 붙이고는 별 의식 없이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 넣어도 그만인 그런 흔해 빠진 물건이다.

그렇다고 남의 것을 마음대로 가져도 되나. 예비군 훈련 갔다 남은 동전 털어 라이터를 산 백수건달 봉구(김승우)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어설픈 조폭 두목 철곤(차승원)에게 집요하게 돌려주기를 요구한다.

얻어터지고, 짓밟히더라도 지옥에까지 따라가리라. 급기야 불법, 폭력 선거운동으로 당선을 도와준 국회의원 박용갑(박영규)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부산행 새마을 열차에 탄 철곤과 그의 부하들을 쫓아간 ‘의지의 한국인’ 봉구.

‘라이터를 켜라’는 기차 안에서 물고물리는 엇비슷한 상황을 맞은 봉구와 철곤 일당, 철곤과 박용갑의 대립, 그리고 주변인물(떠벌이 강성진, 침착한 유해진, 내숭 떠는 호스테스 김채연)의 반응이 그야말로 폭소 코믹극을 만들어 낸다.

단단한 머리를 타고난 고집불통 봉구, 허풍쟁이 철곤, 민주투사를 자처하는 박용갑 등 캐릭터 설정과 기발한 대사, 예상을 뒤집는 상황을 적당히 과장스럽게 잘 버무렸다.

장항준(36) 감독은 ‘박봉곤 가출사건’과 ‘북경반점’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이 영화가 데뷔작. 코미디의 문법과 속도를 잘 맞춰가는 깔끔한 연출을 선보였다.

그런데 웃다가 문뜩 “전에도 이런 비슷한 것으로 웃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와 캐릭터, 제한된 공간설정, 웃기는 대사 스타일과 감정처리가 ‘주유소습격사건’ 이나 ‘신라의 달밤’과 너무나 닮았다.

아! 맞아, 모두 한 작가가 잇따라 쓴 작품이니까. 19일 개봉, 15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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