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히 들어선 고층 아파트 단지의 삭막함을 표현하는 ‘아파트 숲’이란 말은, 적어도 최근 세워지는 아파트들에 관한한 문자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파트 단지가 진짜 ‘숲’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주택건설업체들이 단지 내에 멋진 공원과 연못 시냇물 폭포를 조성하고 자연 암석으로 아파트를 휘감는 등 ‘조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물론 높아진 주택수요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한 채라도 더 팔기 위한 업계의 생존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연 속의 아파트’가 늘어나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환영할 일이다.
■단지내 조경, 얼마나 좋아졌나
주차장을 100% 지하에 넣어 지상에는 차 대신 벤치와 나무만 있고 분수대에 조깅코스ㆍ산책로를 별도로 갖춘 아파트 단지를 요즘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아예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단지들도 줄을 잇고 있다.
동일토건이 경기 용인시에 지은 동일하이빌 1차 아파트에는 송사리를 잡으러 다녔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실개천이 단지 전체를 휘감아 흐른다.
물론 물고기도 산다. 지난달 입주를 마친 쌍용건설의 용인 구성2차 쌍용 스윗닷홈 아파트에는 동과 동 사이에 소형 폭포가 들어섰다.
서울 미아동의 SK 북한산시티 아파트에는 수십억원을 들여 옮겨놓은 자연산 암벽으로 치장한 아파트 옹벽이 위용을 자랑한다.
쌍용건설이 서울 내수동에 짓고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경희궁의 아침’에는 경복궁 등 5개 궁궐의 정원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3,500여평의 조경 녹지가 조성돼 입주자가 그야말로 ‘왕’처럼 살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나올 아파트는 또 무엇으로 입주자를 즐겁게 할까. 삼성물산이 시험 삼아 선보인 모델하우스에는 실내에 마련된 화단이 우선 눈에 띈다.
집 밖에 머물던 자연이 실내에까지 들어온 셈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아직 완공된 사례는 없지만, 실내 화단을 설치할 경우 베란다 폭을 현재보다 넓힐 수 있도록 허용한 정책이 시행돼 조만간 환상적인 실내 조경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에 비해 조경이나 휴식공간에 인색했던 오피스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밀라트산업개발이 최근 경기 일산에 분양한 한라밀라트 오피스텔은 ‘ㄷ’자 형태의 건물 중앙부를 공원으로 꾸미는 한편 건물 옥상을 이용하는 재치까지 보였다.
옥상에 마련되는 공원은 벤치와 나무는 물론 짧은 조깅코스까지 갖출 예정. 밀라트산업개발 장영기 차장은 “최근 나오는 오피스텔들은 주거용이 대다수이어서 회사측에서도 주거공간의 쾌적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 정도 시설은 요즘에는 특별하다고 내세울만한 것도 못 된다”고 말했다.
■왜?
우선 쾌적한 환경에 대한 주택수요자들의 욕구가 급격하게 커진 것이 원인이다. 주택수요자들이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제쳐 놓았던 ‘삶의 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업체들은 “아파트를 짓는 기술력이 거의 평준화한 상태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단지 내 조경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동일토건 김격수 실장은 “건설업체들의 시공 능력이나 내부 마감재가 엇비슷한 수준으로 올라 이제 소비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예쁜 단지를 꾸미는 것”이라며 “특히 후발업체나 중소업체로서는 뭔가 다른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붐이 일고 있는 ‘신평면의 개발’이 업체간 차별화를 위한 실내에서의 전투라면, 조경 강화는 옥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의 산물인 것이다.
진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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