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체력에 대한 가차없는 진단, 미사일을 제작한 경험에서 나오는 정교한 데이터 분석력, 눈앞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라토너의 우직함, 기회가 오면 전부를 던지는 승부사적 기질.LG화재 직원들은 구자준(具滋俊ㆍ53) 사장을 보험업계의 히딩크라고 부른다. 실제로 지난 5월30일 사장으로 선임된 뒤 두달여 동안 보여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히딩크의 리더십을 그대로 빼닮았다.
우선 기초체력에 대한 평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이라곤 전혀 없이, 마냥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게 LG화재의 현주소다.”
“규모도 있고, 노하우도 있지만 악착같은 투쟁력이 없다.” 구 사장은 최근 팀별 업무보고를 받은 뒤 직원들에게 이 같이 일갈했다.
LG화재는 현재 손보업계 4위지만, 2~3위인 현대해상, 동부화재와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1.5~0.5%포인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직원들 사이에는 2위 그룹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족감이 팽배해있었던 게 사실.
구 사장은 “보험사들이 대표선수를 뽑아 똑 같은 조건에서 영업을 시켰을 때, 우리 회사 대표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안선다”며 “히딩크가 선수들의 체력단련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을 도입했듯이, ‘이기는 조직문화’를 체질화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목표는 1위가 아니다. “우리가 뛸 때 남들이라고 가만이 있겠느냐. 업계 최고가 되자는 것은 현실성있는 비전이 못된다”고 말하는 그는 1.5%포인트의 시장점유율 격차를 추월, 확실한 2위 자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두달여 동안 자동차보험 장기보험 등에 대한 영업지표와 경쟁력을 비교 분석한 결과이다.
데이터와 현실에 기초한 구 사장의 경영론은 LG정밀 재직시절부터 몸에 배었다. 한양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그는 금성정밀 부장을 거쳐 LG정밀 부사장을 역임하면서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미사일과 유도탄을 개발, 방위산업 국산화의 터를 닦았다.
그는 “경영의 기초는 공학이자 수학”이라며 “감각에 의존한 ‘분위기 경영’이나 ‘여론몰이 경영’을 하다가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고 말했다.
보험산업 경력이 3년도 채 안되는 구 사장의 통계 분석능력은 부하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보험상품은 금융상품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으로 정평나 있다.
며느리와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고, 핸드폰 벨소리를 회사ㆍ친구ㆍ가족 등으로 세분화해 종류를 달리 입력할 만큼 구 사장 스스로가 이미 IT(정보기술)화 돼 있다.
그의 2위 전략은 단기간에 볼륨(매출)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덩치를 키우는 것은 간단하다. 문제는 중장기 성장을 보장하는 기초체력이다.
효율성, 생산성, 수익성 전 분야에서 2위를 굳혀야한다.” 구 사장이 2000년 5월 부실투성이던 럭키생명 사장에 취임해 2년만에 ‘흑자 원년’의 신화를 일구고, 지급여력비율을 생보사 최고수준(386.5%)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펀더멘털을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는 경영철학 때문에 가능했다.
럭키생명 사장 시절 그는 회사 이익에는 별 기여가 없으면서, 외형만 부풀리는 허수 계약부터 모조리 없앴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뉴욕의 보험전문대학인 TCI에서 6개월간 20대 대학생들과 함께 스파르타식 학습을 통해 보험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기초체력을 탄탄히 다지기도 했다.
구 사장이 눈앞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편집증적으로’ 기초체력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는 하프마라톤(21㎞)을 여섯번이나 완주한 마라토너다. 지난 3월에는 럭키생명 노조위원장과 LA마라톤에서 42.195㎞ 풀코스를 발톱 2개가 빠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4시간49분에 완주했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를 잃고 초기에 전력질주하면 완주도 못한 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회사경영도 마찬가지다.”
구 사장이 재벌가 2세-그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 전 락희화학(현 LG화학) 사장의 4남이다-라는 직함보다 ‘보험업계의 승부사’로 더 유명한 것도 ‘펀더멘털론 강화론’과 ‘경영 공학론’, ‘마라톤경영’으로 대표되는 그의 소신있는 경영철학때문이다.
■LG화재는 어떤 회사
LG화재는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해상보험 장기보험 등을 판매하는 손보업계 4위업체다. 지난 3월 말 현재 연간 원수보험료는 2조3,407억원, 시장점유율은 13.4%로, 2~3위인 현대해상 동부화재와 비교하면 시장점유율 차이는 1%포인트 안팎.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지급여력비율만 보면 삼성화재(427%)에 이어 2위(203.2%)이다.
모태는 1959년 설립된 범한해상보험으로 70년 럭키그룹이 이를 인수했고, 이어 88년 럭키화재해상보험, 95년 LG화재로 상호가 변경됐다. 1999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2000년 럭키생명을 인수하면서 손보ㆍ생보를 포괄하는 보험전문그룹으로 성장했다.
LG화재는 손해보험 43년의 전통답게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고객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상요원들이 현장에 즉시 출동하는 긴급출동서비스(매직카)를 손보업계 최초로 96년 도입했고, 97년에는 콜센터를 가장 먼저 운영했다.
콜센터 설치로 고객들은 사고가 났을 때 24시간 보험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시스템도 2000년 LG화재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다양한 보상서비스와 특약도 이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 고객들이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과 같은 해외 유명병원에서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검진 서비스와 장례대행 서비스 등을 올초 도입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객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경영방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출시한 ‘아이러브 차차차 운전자보험’은 10%에 달하는 여성운전자들을 위해 사고시 성형수술비, 가사보조비 등을 지급하는 색다른 특약을 포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 구자준 사장은
▦1968년 경기고 졸업
▦74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금성사 입사
▦78년 금성정밀 부장
▦87년 금성사 상무
▦94년 LG정밀 부사장
▦99년 LG화재 부사장
▦2000년 럭키생명 사장
▦2002년 LG화재 사장
■가족관계 및 취미
▦부인 이영희(50) 씨와 2남
▦취미: 골프(싱글), 마라톤(42㎞ 완주), 등산(히말라야 K2봉 등정), 야구(경기고 시절 대표선수)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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