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사상 획기적인 정치개혁으로 각광 받던 상향식 공천제가 표류하고 있다.미니 총선이라 불리는 이번 8·8재보선 공천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약속이나 한 듯 상향식 공천을 배제하고 있다.지구당 경선을 통한 상향식 공천이 돈 경선 시비에 말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사를 영입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에서다.그러나 상향식 공천이 과도기적인 정치현실에 밀려 정착되지 못할 경우 밀실 담합공천,1인지배에 의한 정당권위주의 청산 등 핵심적인 정치개혁이 물 건너 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이번 8·8재보선 공천에서 각 당이 상향식 공천을 배제하는 배경과 속사정 및 실태,각계의 우려와 의견을 정리한다.≫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선 100% 가까이 상향식 공천을 했으나 8ㆍ8 재보선은 중앙당에서 후보를 정하는 옛날식으로 돌아갔다. 형식상으로는 ‘재보선은 예외로 할 수 있다’는 당헌의 특례 규정에 따른 것이지만 13곳 중 한 곳에서도 상향식 공천을 하지 않은 것은 “경선을 했더니 지구당 조직이 출마자별로 사분오열하는 등 문제가 더 많더라”라는 식의 부작용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된 결과이다.
실제로 한 당직자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경선으로 시장 후보를 선출했으나 뒤늦게 파렴치범으로 밝혀져 중앙당에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교체된 후보측이 연일 중앙당으로 몰려 와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홍역을 치러야 했다. 경선이 과열되면서 대의원 자격을 둘러싼 논란도 컸다. 일부 경선 출마자들은 지지자의 당비를 대납해 주며 투표에 참여할 급조 당원을 만들었고 이에 항의하는 상대 후보측과 충돌하는 사태가 심심찮게 빚어졌다. 논란 끝에 중앙당은 상향식 공천으로 올라 온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원 후보 중 20명 가까이를 교체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선이 과열되면서 나타난 ‘돈 선거’ 등 혼탁상과 조직의 내분이다. 특히 경선 후보들이 저마다 파벌을 만들고 탈락자들이 이들과 함께 집단 탈당하는 최악의 사태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당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상향식 공천은 대세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부작용 때문이다.
민주당이 겪은 상향식 공천의 부작용도 한나라당과 비슷했다.중앙당 주변을 전경들이 에워싸야 했던 경선 후유증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이보다 '함량 미달'의 부적격 후보나 당선 가능성에 의문이 있는 후보가 경선을 통과,선거에서 맥없이 패배한 사태가 더욱 심각했다.
민주당은 8·8 재보선 공천을 중앙당에서 결정해 지명하는 하향식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 겉으로는 "전면 경선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실제로는 상향식 공천이 결과적으로 선거 패배의 한 요인이 됐다는 반성이 보다 큰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김민석 전의원이 선전한 서울시장 선거를 두고도 "중앙당이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를 지명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을 정도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공천 전담 기구인 '8·8 재보선 특별대책위'를 구성할 때 이미 "당헌에 규정된 전면 상향식 공천은 힘들겠다"고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이를 두고 당내 민주화 후퇴라는 비판이 일자 한때는 "지역구 사정에 따라 상향식과 하향식 중 하나를 택하겠다"고 경선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내 "광주 북 갑과 군산을 제외하고는 하향식으로 후보를 정하겠다"고 후퇴했고 최종적으로는 "지역구별로 차등을 두기보다는 이번만은 중앙당이 후보를 결정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효섭기자
이동국기자
■한나라당 이상득 사무총장
한나라당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14일 “상향식 공천제의 도입은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결과”라면서도 “아직까지 선진 민주주의 문화가 100% 정착돼지 못해 착근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_지방선거에서 상향식 공천을 실험했는데 장점은.
“우리당은 사고 지구당을 제외하고 100% 상향식 공천을 했다고 자부한다. 비례대표까지 전적으로 지역구와 시도의 의견을 존중해 공천했을 정도이다. 지역 여론을 존중하는 민주성,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는 지방자치의 참뜻을 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_부작용은.
“우선 과당 경쟁에 따른 불공정 경선의 가능성이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지역민이 갈등하고 경선에 떨어진 후보가 탈당하는 등 후유증도 있었다. 과열 경선으로 비용이 많이 들 것을 우려한 자격 있는 후보의 출마기피도 문제다. 물론 민주적 공천이란 흐름에 비추어 앞으로 노력하면 충분히 개선과 보완이 가능하다고 본다.”
_이번 재보선은 과거처럼 하향식 공천으로 돌아갔는데.
“재보선은 단기간의 공천에 따른 물리적ㆍ시간적 어려움이 있어 중앙당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당헌상의 특례규정에 따랐다. 그러나 지역실사, 여론조사, 투명한 공천심사 등 민주성을 최대한 보완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민주 김근태 상임고문
민주당 8ㆍ8 재보선 특별대책위 위원장인 김근태(金槿泰) 상임고문은 14일 “상향식 공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가 전제돼야 하고 선관위가 경선을 관리ㆍ감독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_상향식 공천제를 8ㆍ8 재보선에선 유보한 이유는.
“우선 정기 선거가 아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에서는 국민 경선제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광주시장 후보 선출 때처럼 향응ㆍ매수설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 대신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민심을 파악했다.”
_지방선거 때 상향식 공천의 후유증이 거론됐는데.
“우선 향응ㆍ매수설을 막을 수 없었다. 경선 불복이 적지 않았으며 유권자들도 누가 불복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구당 내에서 분파 갈등이 심해졌다.”
_상향식 공천제는 오히려 신진 인사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양식 있는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지 않는다면 신진 인사의 진출이 어렵고, 투기적인 3류 정치인들이 활개를 칠 가능성이 크가. 그럴 경우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_상향식 공천제를 뿌리내리도록 하려면.
“시민이 참여, ‘패거리 정치’ ‘1인 보스 정치’를 극복하는 장점이 있으므로 국민 참
여 및 제도적 보완을 통해 상향식 공천제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학계·시민단체 제언
학계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치권의 8ㆍ8 재보선 하향식 공천 회귀를 비판하면서 지방선거 등에서 나타난 상향식 공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관련 규정의 조속한 정비 등 정치권의 노력을 촉구했다.
인하대 김용호(金容浩) 교수는 “당비를 내고 활동하는 ‘진성(眞性)’ 당원이 없는 구태의연한 당 구조에 상향식 공천이라는 민주 제도를 혼합시키는 한 부작용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면서 “현재의 지구당 위원장 독점 체제를 영국처럼 협의체로 바꾸는 등 당 조직의 종합적 개혁이 함께 모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경선을 일반 국민에게 완전 개방하는 방안도 함께 주장했다.
고려대 이내영(李來榮) 교수는 “정치인들 스스로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제도를 만들기 힘든 만큼 상향식 공천제의 무산이나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당내에 국한된 논의의 장을 시민단체나 학계 등 외부 전문가에게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의했다. 이 교수 등 학계 인사들은 지방에서 신청한 후보를 중앙당이 심사하고 2, 3배수로 압축해 경선 후보로 내려 보내는 피드백 개념의 영국식 상ㆍ하향 혼합식 공천제에 많은 관심을 표했다.
시민단체는 조속한 법제화와 정치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경실련 지방자치위원회 김용철(金容徹) 부장은 “현재 대선에 신경을 쓰느라 상향식 공천제 보완작업은 뒷전으로 밀쳐 놓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상향식 공천을 법제화해 강력하게 추진하는 독일의 예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시민감시국 관계자는 지방자치 및 지방정치 활성화 필요성과 함께 당원 교육 등 상향식 공천 정착을 위한 정치문화 개선 방안 마련도 주문했다.
여성계는 여성의 경선 승리가 어려운 점을 감안, 특별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서울시립대 김민정(金玟廷ㆍ여) 교수는 “지방선거에서 나타났듯 상향식 공천에서는 여성의 정치 진입이 더욱 어려워 지는 게 현실”이라면서 “지역구나 비례대표의 일정비율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강제 규정 등 특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30%를 여성에 할당토록 규정한 한나라당 당헌을 거론하며, “다른 조항과 충돌할 경우 여성 특례 조치를 우선하도록 하는 등의 시행 의지가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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