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무슨 색깔이죠?” “흰색이요.” “종이는 무슨 색깔이죠?” “흰색이요.” “그럼 젖소는 뭘 마시죠?” “우유요.”연속적인 질문에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답한다. 젖소가 마시는 것은 우유가 아니라 물이다. 인간의 뇌에 부여된 암시의 힘이다.
회색과 흰색과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145㎤ 물질. 소설 ‘개미’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1)의 신작 장편소설 ‘뇌’(열린책들 발행ㆍ전2권)가 나왔다.
2001년 11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뒤 ‘베르베르의 소설 중 최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뇌’의 국내 출간을 맞아 베르베르가 17일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의 방한은 두번째다.
확실히 베르베르의 소설은 더 많은 독자를 위한 것이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평단에서는 무관심한 이 작가의 독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것을 두고 ‘베르베르 신드롬’이라고 이름붙였다.
“베르베르는 빛나는 문체를 추구하기보다 효율성을 겨냥한 빠르고 당돌한 서술 방식을 택함으로써 종종 단순화와 상투어 반복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그러나) 문체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위해서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된다. 베르베르 신드롬은 정말로 존재한다!”
분방한 상상력과 숨막히는 극적 전개, 고정 관념을 벗기는 자극 같은 대중적 재기가, 거친 문체의 약점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뇌’는 ‘인간은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답변의 형식은 두 개의 플롯이 교차하는 추리 소설이다.
신경정신과 의사 사뮈엘 핀처가 컴퓨터 딥블루Ⅳ와의 대국에서 승리해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된다. 그날 밤 핀처는 모델인 약혼녀 나타샤 안데르센과 함께 있던 중 사망한다.
사인은 복상사로 결론지어졌다. 탐정 이지도르 카첸버그는 본능적으로 사인에 의문을 품고, 주간지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와 함께 수사를 시작한다.
두 사람의 추적과 번갈아 전개되는 플롯은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은행원 장 루이 마르탱과 핀처 박사의 은밀한 실험 이야기다.
탐정과 여기자가 찾으려는 ‘최후 비밀’, 신체 중 유일하게 뇌만 기능하는 마르탱과 핀처 박사가 발견한 ‘최후 비밀’은 인간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하는 무엇을 가리킨다.
마약이나 섹스가 주지 못하는 지고의 쾌락을 인간에게 선사하는 ‘최후 비밀’, 소설의 원제이기도 하다.
‘뇌’를 쓰기 위해 베르베르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했는가는 책 마지막 장의 ‘감사의 말’에서 쉽게 헤아려 볼 수 있다.
“의학 부분에 대해서 프레데릭 살드만 박사…뮈리엘 베르베르 박사에게 감사한다. 최면술 부분에 대해서 파스칼 르게른에게, 화학과 생물학 부분에 대해서 …카롤린 드 메우스 박사에게 감사한다. 현장 답사와 관련해서 칸 법의학 연구소장 블랑씨…에게 감사한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뇌 수술을 세 번 참관했다.
작가의 재치도 빼놓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이다. 탐정 카첸버그와 여기자 넴로드는 베르베르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에 나왔던 사람들이다.
카첸버그라는 이름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개미’의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가 자신의 소설 ‘개미’의 아이디어를 ‘훔쳐간 것’에 웃음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핀처 박사는 ‘에일리언3’ ‘세븐’ 등을 만든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이름을 딴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인물이며, 정신의학 분야에서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소설 속 핀처 박사는 그와 비슷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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