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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건설적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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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건설적인 반대

입력
2002.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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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자 ‘메아리’칼럼에 ‘이제 히딩크를 잊어라’고 썼다가 곤욕을 치렀다.아침부터 온 이메일의 내용은 거의 다 비난이었다. “3대에 걸쳐 망하라”고 악담하거나 “야, 이 10새야”, “너는 예수를 팔아 먹은 유다같은 놈”이라고 욕한 사람도 있다.

“너같은 기자놈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하지 못하는 거야”라고 일러 준 이메일도 있었다.

■월드컵 4강의 신화와 히딩크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을 것이다.

대세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대단하다.

VOA는 지난해 9ㆍ11테러로 살벌한 애국열기와 전쟁 분위기에서도 공정하게 이성을 지켜 보름 전 미국 외교관협회로부터 ‘건설적 반대’상을 받았다.

연방정부가 예산지원을 하는 준관변조직인데도 탈레반지도자 오마르를 인터뷰해 방송했던 것이다. 국무부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지만, 정작 시상식에는 콜린 파월 장관도 참석해 박수를 쳤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월드컵 정신에는 관용의 정신도 들어 있을 것이다.

관용을 뜻하는 프랑스어 톨레랑스는 다른 사람의 사고ㆍ행동방식의 자유와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너그러움과 같은 동양적 의미의 인간적 가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가치이며 이성에 기초한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죽도록 싸울 것”이라고 한 볼테르의 말에 관용의 정신이 집약돼 있다.

일본속담에도 ‘의견과 떡은 찧을수록 잘 이겨진다’는 말이 있다.

■대세와 다른 소수의견과 건설적 반대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요체가 공존과 관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런 점에 익숙하지 못하다.

회의는 상급자의 지시로 일관되기 일쑤이며 반대론자는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교통벌점 감면조치는 문제점이 많았는데도 “안된다”고 반대하고 나선 장관이 하나도 없었다.

국사의 최고 의결기구인 국무회의조차 그런 정도다. 우리 사회에는 건설적인 반대가 매우 적고, 건설적인 반대에 대해 다시 건설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은 더욱 보기 어렵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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