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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 '자유교육 순교자' 페레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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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 '자유교육 순교자' 페레를 만난다

입력
2002.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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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박홍규지음1901년 세계 최초로 자유학교를 세우고 그것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다 1909년 나이 50에 사형에 처해진 사람.

그래서 자유학교를 위한 순교자로, ‘스페인의 드레퓌스’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프란시스코 페레다.

그런 그의 생애와 교육 철학을 담은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가 출간됐다.

페레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 이 책은 박홍규 영남대 법대 학장이 쓴 그의 평전과, 페레가 직접 쓴 교육 철학을 번역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페레는 1859년 스페인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스페인은 왕조와 가톨릭의 전횡이 극에 달해 있었다.

면죄부가 버젓이 팔리던 그 암흑시기에 페레는 개혁사상에 자연스럽게 심취했다. 그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27세 때부터 16년간 프랑스 파리에 머물면서.

파리에서 스페인어 교사로 일하던 그는 변혁을 영구적으로 실현하려면 교육적 계몽을 통한 지속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고 서서히 아나키스트로 변모한다.

특히 스페인은 가톨릭이 공교육을 지배하면서 국가와 종교의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1901년 귀국해 바르셀로나에 자유학교인 ‘모던스쿨’을 연다.

자유학교는 열린 학교, 대안학교, 공동체학교 등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획일적, 권위적인 교육을 거부하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체의 양성을 표방한다.

모던스쿨을 연 그는 아나키스트 활동을 사실상 접고 교육운동에 전념한다.

모던스쿨은 학습방법, 학교운영 등에서 기존 학교와 차이를 보였다. 교재는 유럽 각지 지식인에게 의뢰해 만들었는데, 가령 ‘비망록’과 ‘식민지화와 애국심’이라는 교재는 애국심과 전쟁의 공포, 정복의 사악함을 비판하고 있다.

수업은 공장 작업장 실험실에서도 이뤄졌고 지리는 여행을 통해 익히도록 했다. 생물은 식물 채집과 관찰이 주된 학습 방법이었다.

모던스쿨은 남녀공학을 택했다. 당시 스페인 도시에는 공학이 드물었다. 그는 여성이라고 가정에 묶여서는 안되며 양과 질에서 남성과 같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가톨릭의 영향 하에 남성 중심주의가 지배적이던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유능한 아동과 무능한 아동을 구별해서는 안된다며 상벌을 두지 않았고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기계적으로 암기토록 한다는 이유로 시험도 부정했다.

나아가 피억압자인 노동자가 교육의 주체가 돼야 하며 직접 돈을 모아 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을 그 학교에 보내 국가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1906년 그를 국왕 테러 사건 공모 혐의로 체포한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1909년 군사반란 배후조종 혐의로 다시 체포된다. 그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처형되고 만다.

그를 죽인 스페인 정부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혁명적 순교자 목록에 그의 이름이 오르고 미국에서는 그의 교육 철학을 실현하려는 페레협회가 발족했다.

자유교육으로 전세계 초등교육의 혁신을 가져온 영국 서머힐 학교의 창립자 닐이나 노동자 자녀 교육 운동을 편 오스트리아의 슈타이너, 아이들 스스로 상황에 대처하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지도록 한 프랑스의 프레네 등 다른 자유교육 사상가들도 그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조국 스페인에서도 변화가 많았다. 의무교육 법률이 제정됐고 남녀공학이 도입됐다.

교과서와 시험 없는 초등학교가 생겼으며 민요를 중심으로 한 음악교육과 미술관ㆍ박물관 견학 및 역사 순례 등의 새로운 교과과정이 개설됐다.

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그의 교육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교육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맞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또 요즘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과다하게 만끽하면서 책임감과 규율이 부족하고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개탄도 들린다.

하지만 극심한 입시경쟁과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만 생각하게 하는 비인간적 교육 풍토를 우려한다면, 아동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일체의 권위주의를 배격한 그의 교육 철학은 여전히 음미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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