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이란 책을 읽었다.나이와 함께 오는 삶의 지혜 58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세번째가 ‘나쁜 일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고집스럽게 해명하면, 궁지에서 벗어나고 모든 게 잘 될거라고 믿고 있다. 여기서부터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결백하다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추문이 사실이라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대체로 현명한 처사라는 것이 저자 로저 로젠블라트의 조언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을 둘러싼 파문을 떠올리면서 혼자 무릎을 쳤다. 그는 아들 사위의 히딩크 촬영건을 변명하려다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부인 동문회에 강연간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태풍 진행상황까지 끌어다 댔다.
여기서라도 멈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엔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에게 맞불을 놓았다.
‘이명박 만세’까지 불러댄 이명박 팬들의 순수성을 믿기에는 시민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그는 정말 몰랐을까.
차분히 머리를 식히고 보면 사실 별 것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아들의 티셔츠가 Be the Reds!!가 아니고 Vodafone이 새겨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 것이었다든가, 신고 있던 샌들이 55만8천원짜리 트루사르디 제품이었다는 것쯤 그가 공개 재산만 176억원에 이르는 억만장자의 2세임을 생각하면 까짓 눈감아 줄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 여학생도 계돈 타 페레가모 구두 사 신는 세상이니까.
진정으로 슬픈 일은 이명박시장이 정말 뛰어난 서울 시장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현대건설을 이끌며 정주영회장 밑에서 배운 노하우들이 우리의 서울을 정말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그를 믿어야 좋단 말인가.
심리학자들의 오랜 관찰에 따르면 인간은 상대방을 몇가지 단서만으로 쉽게 단정지어버리는 ‘인지적 구두쇠’이다.
사려깊게 이것 저것 생각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첫 인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시장으로서의 그의 첫 인상은 ‘거짓말’ ‘공과 사 분별없음’ ‘여론 조작’ 등이 되어버렸다.
이같은 상황에선 당장 서울 시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도 별로 이상스럽지 않다.
하지만 어쩌랴. 그는 바로 서울 시민이 뽑은 시장인 것을. 서울 시장실로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을 우송할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나 자신 ‘나쁜 일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고. 그게 바로 유쾌한 시민이 되는 지름길인지도 모르니까.
/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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