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ㆍ11 개각은 12월 대선에 대비한 중립성을 확보하고 비리사건, 서해교전 사태 등으로 흐트러진 분위기를 일신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특히 ‘여성 재상(宰相)’의 카드는 민심 수습을 위한 신선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임기 말 국정을 대선 국면의 무한 정쟁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을 갖는 측면이 더 강하다.
대과없이 내각을 이끌어온 이한동(李漢東) 총리를 교체, 장상(張裳) 총리를 발탁한데는 이런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장 총리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객관적으로 정치력이나 장악력, 행정경험에서 현 정부의 초대 총리인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 박태준(朴泰俊) 2대 총리, 이한동 3대 총리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총리를 선택한 이유는 임기 말에는 행정력, 장악력 이상으로 중립성과 상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중립내각의 이미지에 학계, 시민단체에서 평생을 바쳐온 장 총리처럼 적합한 인물은 없다.
정치권과 연(緣)을 갖거나 야심있는 인사가 총리를 맡을 경우 끊임없이 견제를 받겠지만, 장 총리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정치권은 여성표를 의식, 여성 총리를 향해 무리한 공세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회 임명동의 과정에서도 여성 총리라는 점은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고려는 적극적인 국정 운영이라기 보다는 소극적, 방어적 자세로 비친다. 정부가 임기 말에 욕심을 내는 것이 오히려 분쟁과 불협화음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무위(無爲)의 선택 또한 적지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아들인 현철(賢哲)씨 구속 이후 사실상 국정에 손을 뗀 것이 IMF위기를 초래한 경험에서도 이런 우려가 제기된다.
각료들의 인선에서는 안정성에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金成豪) 보건복지, 김호식(金昊植) 해양수산부장관과 김진표(金振杓) 국무조정실장이 대표적인 전문관료이며 이상철(李相哲) 정통부장관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특히 김정길(金正吉) 법무부장관을 재차 기용하는 대목에서는 내각의 안정적 통할에 무게를 둔 대목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김 법무장관의 기용은 역설적으로 인재 풀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권력누수의 징후, 자신감 상실을 엿보이게 한다.
특히 송정호(宋正鎬) 전 법무, 이태복(李泰馥) 보건복지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교체를 납득할 수 없다”는 식의 변을 토로한 파동에서도 임기 말의 어두운 단면들을 볼 수 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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