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도 하는 것 같다.히딩크 전 축구대표 감독이 공항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작별하는 장면은 참 뜻밖이었다.
재회와 작별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공항에서 그들이 우정을 확인하는 모습은 흐뭇한 여운을 남겼다. 거인적 풍모를 지닌 그들이 나눈 말과 편지도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다음 세대에 용기를 심어주고 패기 있는 세대가 나오도록 꾸준히 도움을 주시기 바란다.”(히딩크)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지만 뜻과 뜻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와 함께 나아가는 것.”(백기완)
■ ‘만나는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다소 쓸쓸한 고어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인용하면서도, 뜻은 헤어지지 않고 역사공간에서 만난다는 백 소장의 표현은 잠언 같은 무게를 지니는 듯했다.
이제는 붉은 색과도 헤어질 ‘회색정리(會色定離)의 때’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도 거리에서 붉은 셔츠의 젊은이를 만나면 월드컵의 열기와 추억이 되살아 나는 듯해 반갑다. 그래도 그 많던 붉은 셔츠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거리가 본래의 다양한 색깔을 되찾고, 시민은 편안한 시감(視感)을 회복했으니 좋은 일이다.
■ 월드컵 이후 서울시가 붉은 간판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상인 중에 “붉은 색이 ‘나라 색’이 됐으니 붉은 간판을 하고 싶다”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종전대로 채도 10 이상의 적색이 50% 이상인 옥외 광고물은 단속하고 있다. 붉은 색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운전자 시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다.
대중적 정서도 이해는 되지만, 서울시의 판단이 옳다고 본다. 우리 대도시의 간판은 너무 상업성으로 현란하고 난삽하다. 실
은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 전에 좀더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 붉은 색으로 인해 우리는 6월 한 달 행복했다. 그러나 붉은 색의 강렬함은 한시적일 때 아름답고 감흥을 준다.
사철 붉은 원색에 둘러싸인 폭력적 환경에서 산다면, 그것은 고문과 다르지 않다.
대신 해마다 ‘붉은 옷 입는 날’을 정해서 열광했던 2002 월드컵을 기념하자는 제안은 좋아 보인다.
‘붉은 악마’가 그러했듯이 정부보다는 민간단체가 ‘붉은 옷 입는 날’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도 하다.
그 날 다시 붉은 셔츠를 입고 광장이나 거리에서 ‘꿈이 이루어지기’를 뜨겁게 기원해 보자.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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