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이주일(85)아직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나의 이력서] 이주일(85)아직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입력
2002.07.12 00:00
0 0

올해 2월 초 이태복(李泰馥)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립암센터 병실로 찾아왔다.1월29일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나를 보러 온 것이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수수한 인상이 보기 좋았다.

그는 내 안부를 찬찬히 묻더니 “국민을 위해 선생님이 좋은 일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범국민금연운동본부가 추진중인 금연홍보CF에 출연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몸이 좋지 않은 상태이니 나중에 하자”고 정중히 사양했다.

솔직히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더 이상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지난해 12월 2, 3차례 TV에 출연해 금연이야기를 한 터라 내가 더 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 한 쪽에서는 보건복지부가 환자인 나를 이용하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분당 집으로 이 장관이 찾아왔다. 그는 “선생님 몸 상태가 안 좋고 힘드신 때일수록 TV에 나오셔야 국민이 더 큰 감동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담배의 폐해를 선생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끝까지 나를 설득했다.

“이번 ‘금연 월드컵’ 때는 저와 함께 나란히 앉아 월드컵 구경을 하시죠”라고도 했다.

결국 내가 졌다. 금연CF는 4월 말 첫 방송을 탔고 이 덕분인지 올해 들어 지금까지 350만 명 이상이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CF 중에 나오는 86아시안게임 성황봉송 장면이나 춤 추는 장면은 내가 집어넣자고 했다.

내가 얼마나 건강했던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건강하고 심폐기능이 좋은 사람일수록 담배는 하루빨리 끊어야 한다.

사실 나는 지난해 10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도 이것이 담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폐암 중에서도 미세한 담배 입자가 폐 깊숙이 침투해 일으키는 선암(線癌)이라고 하는데도 나와 아내는 믿지 않았다.

내가 암에 걸렸으면 그건 십중팔구 40여 년을 폭음해온 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고 괴로워했으면 밤에 내가 취해 귀가했을 때 “이제는 다시 술 안 먹겠다”는 말을 아내가 녹음까지 해놓았을까.

그러나 요즘은 내가 암에 걸린 세가지 요인을 이렇게 꼽는다.

담배, 술, 스트레스. 누구에게나 이 세 가지는 건강의 적이다. 특히 담배는 내 손 곁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던 독약이었다.

하루에 보통 두 갑. 무명시절 안주도 없이 막소주를 들이키며 앉은 자리에서 한 갑을 피우곤 했던 그때가 너무나 바보스럽다.

다음에 내가 또 금연CF에 출연한다면 담배 피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라는 내용을 내보내고 싶다. 담배를 피면 손가락질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 자리를 빌어 후배 코미디언 이용식(李龍植)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싶다. 아니, 이용식 뿐만이 아니라 그처럼 심장이 안 좋은 분들 모두에게 드리는 말이다.

그는 며칠 전 또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그렇게나 담배를 끊으라고 하는데도 말을 안 듣더니 벌써 몇 번째인가.

지난 월드컵 때도 10, 20분 간격으로 담배를 피러 가는 그의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담배 맛 있지? 맛 있으니까 독약이야!”

나는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금연 못하면 다른 일도 못합니다. 큰 일 절대 못합니다. 그리고 흡연이 자신에게만 피해를 줍니까? 가족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걸 못 끊으십니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