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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38)토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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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38)토레즈

입력
2002.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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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11일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토레즈가 64세로 작고했다.그의 유해는 파리 제20구 페르라셰즈 묘지의 ‘코뮌 전사들의 벽’ 맞은편에 자리잡은 공산당 묘역에 묻혔다.

토레즈는 20세기 전반 프랑스 공산주의 운동의 뛰어난 지도자였다. 누아옐고도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부터 파드칼레의 탄광촌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토레즈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살에 사회당에 입당하면서다.

당시 사회당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온건 사회주의자들이 동거하고 있었다. 1920년 사회당의 급진 좌파가 탈당해 프랑스 공산당을 창건했을 때, 토레즈도 몸을 함께 움직였다.

그는 1930년에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고, 1932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뽑혔다. 토레즈는 이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밀려오던 파시즘의 물결에 맞서 레옹 블룸, 에두아르 달라디에, 에두아르 에리오 등 범좌파 지도자들과 함께 인민전선을 결성했다.

공산당, 사회당, 급진 사회당 등으로 구성된 인민전선은 1936년 선거에서 승리해 사회당의 블룸을 총리로 앉히고 40시간 노동제 도입 등 개혁 정책을 추진해나갔다.

토레즈는 이 과정에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적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토레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항독(抗獨)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가 모스크바로 망명했고, 1944년 해방 직후 파리로 돌아왔다.

이듬해 치러진 총선거에서 공산당은 25%를 얻어 제1당이 되었다. 이 결과로 들어선 사회당-공산당 연립 내각에서 토레즈는 부총리를 맡았으나 1947년 동서 냉전이 격화하면서 정부에서 물러났다.

그는 1961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다시 뽑혔고, 작고하기 직전에 서기장직을 발데크 로셰에게 이양하고 은퇴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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