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여성 호르몬을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9일 폐경기 이후 복합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는 여성은 유방암, 뇌졸중, 심장 발작 등을 일으킬 위험이 현저히 높다고 발표했다.NIH는 1991년부터 50~79세에 해당하는 1만 6,000여명의 미국 여성이 참여한 ‘프렘프로’ 투여 임상실험을 예정보다 3년 앞당겨 즉각 중단키로 했다.
프렘프로는 에스트로겐과 프로제스틴을 혼합한 호르몬 정제다. NIH는 프렘프로를 장기 복용한 여성은 비 복용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26%, 뇌졸중은 41%, 심장마비 29% 및 심혈관 질환 위험이 22% 증가한다고 밝혔다.
유방암 발병 증가는 예상된 결과지만 심장병과 뇌줄중 증가는 종래의 가설을 뒤집는 결과다. 미국은 중년 여성 600만명이 유방암 위험에도 불구하고 안면홍조 등 갱년기 장애와 심장병 예방 등을 위해 복합 호르몬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프렘프로가 결장암과 고관절 골절 위험은 약 3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NIH는 “단순한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복합 호르몬을 투여하고 있는 여성들은 담당 의사와 복용 중단 여부를 즉각 상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NIH는 당초 이 결과를 17일 발행되는 미국의학협회지(JAMA)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복합 호르몬의 위험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해 앞당겨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3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은 심장 마비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에스트로겐 단일 요법이 혈전 위험을 2배 이상 증가시킨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혈전은 뇌졸중과 폐색전증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NIH 산하 여성건강계획(WHI)의 잭 로소우 박사는 “혼합 호르몬으로 인한 혈관 질환 위험이 복용 1년 안에 급격히 증가하는 등 단기 투여 요법도 안전하지 않다”며 “모든 호르몬 요법에 대한 전반적인 임상실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우리나라 현황
2001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여성 호르몬을 복용하고 있는 갱년기 여성은 전체 폐경 여성의 7%인 50만 명 정도. 특히 서울 강남 지역에선 전체 갱년기 여성의 20% 정도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내에서 갱년기 여성에게 호르몬 치료가 도입된 것은 1984년. 그러나 본격적인 치료는 89년 내과 의사와 정형외과 의사들이 대한골대사학회, 92년 산부인과 의사들이 대한 폐경기학회를 각각 창립하면서부터. 이미 국내에도 5년 이상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 인구도 상당수 있는 셈이다.
80년대에는 에스트로겐 단독 요법이 보편적 치료법이었으나 최근엔 치료 대상자의 60~70%는 에스트로겐과 남성호르몬인 프로제스테론을 함께 투여하는 병용요법을 적용하고 있다. 나머지 30~40%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적용하는데, 주로 자궁 제거수술을 받은 여성이 그 대상이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이정노(李鋌魯)교수는 “이번 NIH 조치로 여성 호르몬 복용을 중단해야겠다고 순간적으로 결심하는 여성이 많겠지만 이는 옳지 않은 생각”이라며 “여성 호르몬의 복용이 자궁내막암, 유방암, 담낭질환을 일으킨다는 보고는 미미하지만, 골다공증 동맥경화증 등 증세를 개선하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제일병원 내분비내과 한인권(韓寅權) 교수는 “여성 호르몬은 장점과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의의 상담을 통해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거나, 여성호르몬 수용체 이상자, 비만인 사람의 경우는 호르몬 치료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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