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영화팬들에게 1950~60년대 흑백 스크린 시대의 마지막 향수로 남아있던 영화배우 로드 스타이거가 9일 77세를 일기로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1951년에 데뷔한 그는 모두 120여편이 넘는 작품에서 강렬하고 개성적인 연기로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67년 ‘밤의 열기 속으로’에서 인종차별의 편견을 극복하는 남부의 보안관 역으로 열연,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타이거는 ‘워터프론트’(1954), 뮤지컬 ‘오클라호마!’(1955), 전쟁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1962), ‘닥터 지바고(1965)’ 등을 거쳐 97년 인류 문명을 풍자하는 SF영화 ‘화성침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의 색깔을 보여줬다.
이들 영화에서 그는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에서부터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교황, 미국 대통령 그랜트,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 나폴레옹, 미국의 갱 두목 샘 지앙카나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 영역을 소화해 냈다.
이같은 연기력에는 그의 치열한 인생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뉴저지 지역에서 자란 스타이거는 아버지 없이 알코올 중독 자인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5살에 나이를 속이고 해군에 입대해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 극단에 들어가 말론 브랜도, 리스트라스버그 등과 함께 연기 수업을 받았으며 브랜도와 함께 ‘워터프론트’에 출연,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되면서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타이거가 자신의 연기 일생에서 최대의 실수로 꼽는 것은 “전쟁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패튼 장군’ 역을 거절한 것인데 이 영화로 조지 스콧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탔다.
80년대부터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으며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데 앞장서기도 한 그는 영국 여배우 클레어 블룸과의 결혼을 비롯해 다섯 차례 결혼했으며 유가족으로 아들 마이클과 오페라 가수인 딸 애너를 남겨놓고 있다.
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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