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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17)극작가 이강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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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17)극작가 이강백

입력
2002.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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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문자로 읽는다는 점에서 문학에 속하고, 무대 위에 공연된다는 점에서 연극에 속한다. 마치 박쥐 같다. 그 옛날 날개 달린 짐승들과 다리 가진 짐승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박쥐는 양쪽을 모두 지지하였다.박쥐의 그러한 행동은, 태생적이다. 생김새를 보라. 본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박쥐는 양쪽 모두에게 배척받았다. 마치 희곡 같다. 오늘날 문학과 연극, 그 어느 쪽에서도 희곡을 진정한 자기 편으로 여겨주지 않는다.

나는 박쥐이다. 문학계에 가서는 희곡은 문학이다 말하고, 연극계에 가서는 희곡은 연극이라 말한다. 나의 이러한 태도는, 역시 태생적이다.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있고, 또한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이중모순, 바로 그것이 나를 태어나게 만든 자궁이며, 내가 살아가야 하는 세계이다.

희곡은 말과 행동을 써놓은 대본이다. 모든 인간은 배우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대본을 연기하고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대본은 타인이 써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썼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내가 어렸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 날개 달린 짐승들과 다리 가진 짐승들 사이에 전쟁이 재현된 것이다. 도시의 박쥐들은 산 속으로 달아났다. 전주에 살던 우리 가족도 시골로 피난 갔다. 그런 후 돌아왔더니, 마실 물이 없었다.

상수도 시설은 파괴되었고, 우물들은 시체로 가득 찼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고 온갖 질병에 걸렸다. 특히 어린애들은 병에 취약했다. 의료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사느냐 죽느냐는 각자의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다. 삶은 완강히 나를 거부하였고, 죽음 역시 나를 흔쾌히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기간이 몇 해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앞집, 뒷집, 건넛집…. 내 또래의 아이들이 병을 앓고 있거나 심각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운명이 알고 싶었다.

전주에는 유명한 점쟁이가 살았다. 전생(前生)을 훤히 알고 있었다. 부모들은 그 점쟁이를 찾아가 자식의 운명을 물었다. 점쟁이는 아이마다 하나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생에서 그렇게 그렇게 살았으니, 이생에서 이렇게 이렇게 산다고 했다.

나의 어머니는 당신이 들은 내 전생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다. 한 시간 가량 되는 길고 긴 이야기였다. “넌 일찍 죽지 않는다. 이야기가 긴 걸로 봐서 네 수명은 길어.” 어머니는 옆집 아이를 걱정했다. “그 애는 이야기가 짧아. 얼마 못 살 것 같다.”

전생이 있는가, 없는가. 그 있고 없음은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이다. 내가 들은 길고 긴 전생 이야기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엮어진 대본이었다. 그 중 한 사건은 이렇다.

나는 전생에서 한량(閑良)이었는데, 연꽃이 만발한 초당(草堂)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그 초당에서는 한 선녀가 북을 두드렸다. 한을 품고 들으면 지극히 한스럽고, 흥을 품고 들으면 지극히 흥겨운 북소리였다. 나는 그 선녀에게 참으로 절묘한 솜씨라고 칭찬했다. 그리고는 내 솜씨도 그대 못지않으니 북채를 빌려달라 하였다. 선녀가 북채를 주자 나는 북을 두드렸다. 그런데 도중에 북채를 부러뜨렸다.

(그래서 점쟁이는 해석하기를) 나는 전생의 그 인연으로 이생에서 아주 절묘한 솜씨를 가진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북채를 부러뜨린 잘못 때문에, 그 여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미안해질 것이다. 아, 나는 그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지금 그 대본대로 살고 있는가. 맞느냐, 틀리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맞고 틀림을 떠나 이렇게 생각한다. 전생의 대본대로 이생을 산다는 것은, 이생을 살면서 다음 내생(來生)의 대본을 쓴다는 것이다. 즉, 대본이 등장인물을 만들고 그 등장인물이 대본을 만든다. 출생은 전생에서 이생으로 나오는 문이며, 죽음은 이생에서 내생으로 나가는 문이다. 문과 문 사이에 계속 이어지는 삶, 영원한 삶이 있다.

영원함,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원함은 과거완료형도 아니고, 미래예정형도 아니며 언제나 현재 진행되는 것이다. 희곡이 그렇다. 희곡(대본)을 읽어 보라. 모든 말과 행동이 현재진행형으로 쓰여있다. 희곡을 연극으로 공연해 보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아주 실감나게 볼 것이다.

전주는 순회극단들이 자주 왔었고, 단골 관객들이 많았다. 특히 ‘임춘앵 여성국극단’의 공연은 최고 인기였다. 나는 그 극단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다섯 번이나 보았다. 그들은 이중모순의 표본이다. 호동왕자를 사랑한 낙랑공주는 자명고를 찢어야 했다. 자명고도 보존하고 사랑도 성취한 낙랑공주는 없다. 호동왕자 역시 그렇다. 낙랑공주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공주는 죽게 되어 비탄에 빠진다.

연극에서 호동왕자는 주몽의 후예답게 행동했다. 그는 낙랑공주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 소년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시위를 잡아 당겼다. 관객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그때 낙랑공주의 시녀가 손거울을 떨어뜨렸다.

그 거울은 청동제품이어서 깨어지지 않았으나, 잠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충분하였다. 그 순간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관객들이 소년을 바라보자 화살은 이미 사과에 꽂혀 있었다. 낙랑공주가 호동왕자의 그 놀라운 솜씨에 반한 것은 물론이다.

내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다섯 번이나 본 이유는 그 순간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볼 때마다 손거울에 속았다. 시선을 소년의 머리 위 사과에 고정시키고, 다른 것은 일체 보지 않으려고 해도, 손거울이 떨어지면 빙그르 고개가 돌아갔다.

전주에는 유명한 사기꾼이 살았다. 관객들이 손거울에 속듯이, 누구나 그 사기꾼에게 속았다. 나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업이 운전수인 그 사기꾼은 아버지를 유혹했다. 춘천에 가서 군용 트럭을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팔면 아주 큰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저당 잡히고 빚을 얻어 사기꾼과 함께 춘천으로 갔다.

처음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불하받은 군용 트럭은 춘천을 벗어나자 고장났다. 운전수는 끊임없이 수리하였고, 트럭이 전주에 도착했을 때는 산 돈보다 수리한 돈이 몇 배나 더 들었으며, 마침내 완전히 멈췄다.

전쟁 때 피난 가듯이, 우리 가족은 전주를 떠났다. 이번은 목적지가 서울이었다. 나는 그 사기꾼이 아니었으면 서울로 오지 못했고, 서울에 오지 않았으면 많은 연극들을 볼 수 없었다. 서울에서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처럼 노골적으로 이중모순을 드러내는 연극은 저급한 신파극이라 했다. 세련되고 고급스런 연극은, 이중모순을 은밀히 감췄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놓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연극들을 많이 보고 나서야 나도 희곡을 쓸 수 있었으니, 내가 극작가가 된 것은 그 사기꾼 덕분이었다. 그렇다. 이중모순의 인생에는 놀라운 순간이 있다. 원수가 은혜를 베푼 자였음을 알게 되는 극적인 순간이다.

이 순간, 연꽃이 만발한 초당에서는 한 선녀가 북을 두드리고 있고, 지나가던 한량이 감탄하며 북소리를 듣는다. 호동왕자는 소년의 머리 위 사과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고, 낙랑공주의 시녀는 손거울을 떨어뜨린다. 운전수는 고장난 트럭을 수리 중이고, 나의 아버지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그 광경을 들여다본다.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왜 나는 희곡을 선택했는가. 그 대답은, 희곡이 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밖에는,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연보

△ 1947년 전북 전주 출생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 당선 등단

△단막 희곡 ‘셋’ ‘결혼’ ‘파수꾼’ ‘보석과 여인’ 장막 희곡‘개뿔’ ‘쥬라기의 사람들’ ‘호모 세파라투스’ ‘봄날’ ‘유토피아를 먹고 잠들다’ ‘칠산리’ ‘동지섣달꽃본듯이’ ‘북어대가리’ ‘파수꾼’ ‘영월행 일기’ ‘느낌, 극락 같은’ ‘물고기 남자’ ‘마르고 닳도록’등

△1998년~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

△영희연극상(1975) 동아연극상(1982) 서울극평가그룹상(1983)베네수엘라 제3세계 희곡 경연대회 특별상(1985) 대한민국문학상(1986) 한국연극예술상(1994)대산문학상(1996) 서울연극제 희곡상(1998) 백상예술대상 희곡상(2001)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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