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가깝고도 먼 명제다. 남북이 가까워진 듯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터져 온갖 노력을 무위로 돌려 놓곤 한다.12년 전까지 분단국가였던 독일과 한국의 지식인들이 심포지엄에서 통일방안을 모색한 것이 5월말이었다. 그러나 한달 후 서해교전이 발생해 반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통일은 고통스럽더라도 내려놓을 짐이 아니다. 분단이 민족에게 주는 고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 독일 지성인 소설가 귄터 그라스는 “독일은 연합체라는 과도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말했다.
또 남북한도 충분히 교류한 뒤 통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위 ‘북한 퍼주기’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지원을 호소했다.
“남한이 북한을 지원하는 효과는 무조건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역사의 승리자로서 남한은 북한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심포지엄에서 작가 황석영도 지금 단계에서 통일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ㆍ정착시켜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 전제 조건들이 충족된 후 통일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을 대전제로 한 두 작가의 ‘통일을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는 ‘평화가 우선이다’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통일까지는 할 일이 많으며, 그 때까지는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타당한 얘기지만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속도나 방법론 이전에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가 식어 있는 데 있다.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이 남북 모두에서 민족의 에너지를 억누르는 듯도 하다. 그 무렵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독특한 어법으로 남북관계를 역설하다가 혼이 났다.
정당연설회에서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고 말했다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이다.
언론들은 그의 비속어 사용을 장기간 강도 높고 집요하게 비판했다. “대통령 후보가 뒷골목 말을 해서야…”하는 식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앞세운 비판일수록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 말은 사실 민망하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격식을 따지는 형식상의 비판이 남북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강조법적 수사학을 위악적으로 동원한 그 말은 남북관계의 성공에 대한 의지와 집념, 진정성을 강조해서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서해교전 후의 상황을 보면, 그가 우려한 대로 남북의 평화구조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고 순식간에 긴장의 살얼음이 깔린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위악이 아니라 위선이다.
정치인에게는 품격으로 포장된 미사여구보다 창조적인 사고와 실천 의지가 더 값지다. 점잖은 화법으로 치면 최근 구설수에 오른 한 국회의원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주간한국’에서 “우리나라도 명문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장욱진은 도저한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던 화가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탁월했던 그는 겸손-교만-죄의 관계를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다정한 말이 얼마나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북한 퍼주기’라는 말은 어떻게 남북관계를 왜곡하고 있는가.
거친 비속어보다 비수를 품격으로 은폐한 말이 더 위험하다. 우리는 위장된 말로 반민주적 편견을 조장하거나, 평화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교언으로 냉전시대로의 복귀를 속삭여서도 안 된다. 이성적 언어로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