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서의 이른바 ‘구정(舊正)공세’ 전투는 전사(戰史)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1968년 베트남인민해방전선(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설 휴전을 깨고 남베트남 전역에서 동시다발적 공세에 돌입함으로써 근 한달간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초기에는 당연히 선제공격을 한 측에 유리했으나 남베트남군과 미군이 반격, 곧 실지(失地)를 회복하면서 전세가 역전됐고 결국 베트남인민해방전선 등은 4만여명에 달하는 압도적인 병력손실을 입고 퇴각했다.
베트남전의 성격 등은 논외로 하고 군사적 측면으로만 볼 때 이 전투는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완승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는 5년 뒤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역설적 결과를 ‘심리적 패전’으로 설명한다.
그 원인으로 선제기습을 당한 미국민 등의 정신적 공황, 일방적인 아측 피해 부각과 군사적 문제점 등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란 확대, 이에 따른 패배주의 및 회의론 확산 등을 꼽는다.
낡은 전사를 새삼 되짚는 이유는 서해교전을 둘러싼 양상이 별반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매 사안이 그랬듯 이번에도 양립할 수 없는 시각들이 맞서 혼란스럽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군의 문제점과 작전실패론이 크게 부각되고, 이를 해명하느라 군 기밀들이 여과없이 노출되는가 하면 군의 작전상황까지도 정치·사회적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군 작전은 정말 실패했는가. 해군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순간부터 대응에 들어갔다. 월경을 경고하며 기동하다 기습을 당하자 곧장 전면적인 응전이 이뤄졌다.
인근 함정들은 물론 서산 앞바다에서 초계비행하던 공군의 F-16 전투기도 즉각 임무전환돼 현장에 투입됐다.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링스(Lynx)헬기도 출격태세에 들어갔으며 육군의 해안포도 일제히 전투배치됐다.
거의 완벽한 육·해·공 입체작전이 5분 이내에 이뤄졌다. 무엇보다 적의 선제사격에 몸이 찢기고 잘리워진 상황 속에서도 젊은 장병들은 실탄을 완전히 소모할 때까지 응사하는 투혼을 보여 주었다.
군에 무엇을 더 요구할 것인가. 문제라면 급박한 전황 속에서 사상자 수를 잘못 전달받아 전과를 낙관했다는 정도다.
교전상황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북측이 마음먹고 한 ‘전투실험’에서 또한번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낭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작금의 논란에는 정부차원의 대북정책과 군 작전에 대한 시비가 기묘하게 혼재돼 결과적으로 군을 포함한 모두를 심리적인 패배자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정책의 실패를 입증키 위한 논거로 정당한 군 작전을 지나치게 문제삼는 것은 옳지않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공세에 군의 전략과 전술마저 소모품으로 쓰이고 있다”는 한 장성의 자조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들린다.
이준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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