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황 호전과 수급 개선 기대감으로 상승무드를 타고 있는 주식시장에 환율이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이미 심리적 지지선인 1,200원선을 이탈했고, 우후죽순처럼 불거져 나오는 미국 기업들의 회계스캔들로 전 세계 금융ㆍ외환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우리 주식시장만 꿋꿋이 상승세(차별화)를 지속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은 양날의 칼
시장수급의 관점에서 볼 때 환율 하락기조는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보유 및 추가매수 기대감을 부추긴다. 보유주식의 달러화 환산 가치상승(환차익) 기대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9ㆍ11테러 직후인 지난해 10월 종합지수 500선(10월4일ㆍ500.64)에서 주식을 산 외국인투자자는 8일(783.35)까지 56.5%의 지수상승 차익 뿐 아니라, 원ㆍ달러 환율 1,304원(지난해 10월4일)에서 1,190원대까지 하락세를 감안한 달러환산 종합지수(8일ㆍ858.39)의 차익(75.04)도 얻은 셈이어서 총 71.5%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또 달러화 약세와 미국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회피는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의 매력을 높여 신규 자금 유입으로 연결되고, 이 같은 기대감에 국내 기관과 일반투자자의 순매수 구도로 선순환하기도 한다.
9일 증시가 기관 매수세에 힘입어 14거래일 만에 800선을 탈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 최근의 외국인 매수자금 가운데 일부는 미국 이탈자금일 것으로 증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식의 ‘환율 특수(特需)’는 환율이 적정수준에 이른 시점에서는 이익 실현(주식 매도)의 동기로 작용하는 만큼 단정적으로 호재ㆍ악재를 가르기는 힘들다. 신영증권 장득수 부장은 “원화가지 절상이 시장 수급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호재와 악재가 혼재된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증시 펀더멘털엔 부담
환율 하락은 수출기업의 매출과 이윤을 떨어뜨려 주가수익률을 하락시킨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건 수출과 수입을 병행하는 만큼 환율과 주가수익률 관계는 해당 기업의 수출ㆍ입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또 환율과 주가는 경기여건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1998~99년 주가 대세상승기에는 세계 경기가 호조세를 보이면서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늘었다. 하지만 최근 환율 불안은 원화강세 요인보다 달러약세 요인에 의해 시작됐고 그 추세가 가파르다는 점, 하반기 이후 우리 경제 성장축이 내수에서 수출로 이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에 반영돼왔다는 점이다. 동원증권 투자분석실 강성모 팀장은 “4월 이후 국내 주가는 환율하락의 영향을 받아 온 게 사실이고, 6월말 이후 반등 역시 1,200선 지지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최근 3개월간의 주가ㆍ환율 동행관계를 볼 때 1,200선 붕괴는 단기 반등모멘텀을 소진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환율 수혜주 다시 부상
환율수혜 대표 종목인 대한항공 주가는 9일 1,050원(5.90%)이 오르며 나흘 연속 상승했고, 아시아나항공도 닷새째 반등에 성공했다. 한전 역시 원유 수입단가 하락과 자회사 매각 등을 재료로 750원(4.49%)이 뛰었다. 한화증권 김성노 연구원은 “지난 2개월간의 환율 하락으로 관련주들은 펀더멘털 개선 효과를 거뒀지만 주가는 수급 등 시장리스크에 묻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며 “시장리스크가 줄어드는 시점에서 본격적인 상승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환율하락 수혜 업종으로는 건설 증권 도소매 의약품 유통 금융(이상 제일투자증권 추정), 한국전력 정유 항공 해운(한화증권 추정) 등이 꼽히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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