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세계’ 여름호에 정은숙씨의 시 두 편이 실려있다.둘 다 쓸쓸하다. 이 시에서나 저 시에서나 화자는 덩그렇게 내던져져 외롭다. 그가 물리적으로 혼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동행자 사이에 놓인 벽 앞에서 참담하다.
첫 번째 시 ‘마흔 살’에서 소통 불능의 적막함은 나이와 관련돼 있다.
“서해 바다에, 비가 내리는 서해 바다에/ 쓸쓸하다. 한 때는 신의 주름치마마냥 화려했던 해안이/ 이제는 방조제가 놓여져/ 염분 가득한 내음만 남았다// 우리는 밤 늦은 시각/ 서해에 닿아 방조제 끝을 바라본다.”
‘마흔 살’이라는 활자를 떠난 눈길이 (해가 저문) 서해 바다를, (을씨년스러운) 비를, (딱딱한) 방조제를, 과거의 화려함 대신 염분 냄새만 풍기는 해안을 쓸어 내려가며 귓전에 적막의 맥놀이를 만들어낼 때, 마흔 살은 이제 도리 없이 쓸쓸한 나이다. 화자는 그 쓸쓸함을 되뇐다.
“서해 바다는 쓸쓸하다/ 누구도 누군가의 다른 위안이 되지 못한다./ 오직 그대와 나만이 콘크리트 위에 남았을 뿐이다.”
그 콘크리트는 해안에 쌓은 둑, 곧 방조제의 콘크리트다. 그 콘크리트의 굳은 질감은 그곳에 오롯이 남은, 그래서 가장 가깝다 할 그대와 나의 속살마저 갈라놓고 있는 각질의 감각, 마흔 살의 감각이다. 화자는 결국 한탄한다.
“저 홀로 깊어지기가/ 어려운 일이란 걸 왜 말해주지 않았더란 것이냐.”
두 번째 시 ‘봄밤’에서 교감의 불능은 나이와 무관한 원초적 존재 조건에 가깝다.
“차가운 차창에 이마를 기대었네/ 횡단보도를 벗어나 한 순간 시야 밖으로 그대 사라지고/ 나는 부서져오는 가슴 한 조각을/ 투명한 유리창 속으로 집어넣을 듯이 밀었네/ 그러나 이 감정은 아주 오래된 것/ 나는 느낌표 몇 개를 마음속 여백에다 콕콕 찍었네.”
‘봄밤’의 ‘그대’는 어쩌면 ‘마흔 살’의 ‘그대’와 동일인일지도 모른다.
차에서 ‘그대’를 막 내려보낸 화자는 그와의 교감 가능성을 지레 포기한 것 아닐까 잠시 아쉬워하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아 느낌표 몇 개를 찍고 만다.
아마 ‘이젠 정말 끝!’ 하는 느낌표이리라. 그리고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의 치료를 수행한다.
“흔들리면서, 저 밤하늘을 향해/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어보지만 그렇지만/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고/ 내 사랑을 지금 불러놓아도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고/ 몇 번은 더 그런 적도 있지만/ 깊은 어둠만 더 깊어졌을 뿐이라고/ 이 가슴 속의 불구를 끄집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되뇌어보네.”
누구도 고쳐줄 수 없는 ‘가슴 속 불구’를 확인하는 화자의 봄밤은 서럽다. 그러나 그 밤은 마지막 네 행의 꽃불 아래 찬란하게 요염하다.
“한없이 작아지는 떠도는 마음 속에서/ 무슨 송사리떼 같은 것이 하늘을 맴돌아/ 짚어도 닿을 것 없는 깊은 슬픔만/ 꽃수술을 달고 흐르는 봄밤에.”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