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이 오히려 대량 살상 무기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8일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에 열을 올리는 사이 이른바 ‘불량 국가’와 과격 테러단체들의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게재한 특집 기획 시리즈 ‘세계의 대량살상무기’ 첫 회에서 지난해 9ㆍ11 테러 이후 핵무기, 생화학 무기 등을 입수하려는 테러단체 등의 움직임이 감지됐지만 무기 재료 및 개발 기술에 대한 보안은 허술한 반면 거래는 철저히 지하에서 이뤄져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보급책 러시아
이 신문은 러시아가 사실상 대량 살상 무기의 보급책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용 플루토늄과 우라늄은 각각 150톤과 1,500톤이다.
1945년 일본에 투하돼 20만 명의 사망자를 낸 플루토늄이 겨우 야구공 크기의 분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구 소련 붕괴 이후 이것에 대한 통제가 약화돼 밀거래, 절도 등 방식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실태를 러시아 정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핵무기통제계획의 게리 밀홀린 이사는 “이 중 단 수 ㎏만 테러단체로 흘러가도 엄청난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무기 전문가들이 실제로 우려하는 것은 무기 관련 브레인 파워의 유출이다. 월 200달러(24만원) 수준의 낮은 보수와 잦은 임금 체불에 시달리는 러시아 핵 전문가들의 해외 진출은 1990년 중반부터 러시를 이뤘다.
러시아 과학학회의 발렌틴 티크호노프 연구원은 “이들 중 상당수가 중동 지역 및 테러단체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문제”라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은 올 초 러시아 핵 전문가 두 명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와 몇 차례 접촉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
▼이라크 3~5년내 핵 개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허술한 관리에 가장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이라크는 2000년 우크라이나공화국과 비밀 무기협정을 체결하는 등 구 소련지역의 핵 과학자들과의 활발한 지하 교류로 3~5년 안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핵무기사찰단 추방 이후 내려진 제재조치를 해외 핵시설 건설 및 실험 등의 편법으로 교묘히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는 러시아, 이라크 외에도 불량 국가 및 핵 보유국 사이의 대량 살상 무기 암거래가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한 폭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유지하거나 경제적 대가를 노리고 미사일 및 생화학 무기 기술을 정책적으로 암거래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혔다.
지난 해 9월 중국은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에 미사일 개발 기술을 비밀리에 전수한 혐의로 미국으로부터 제재조치를 당했다.
▼북한미사일 기술 구매 러시
특히 1998년 3단계 미사일 발사에 성공해 세계를 경악케 한 북한의 미사일 판매 및 기술 전수 자체가 핵폭탄급의 위협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핵무기, 생화학 무기를 목표지점까지 운반, 투하하는 미사일의 사정 거리가 길수록 무기의 파괴력이 커지기 때문에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등과 테러단체들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한 대가로 핵무기 및 생화학 기술을 전수 받는 등 대량 살상무기 거래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이 러시아의 핵위협 제거를 위해 마련한 넌-루거 법안(Nunn-Lugar Act)에 따라 향후 10년간 100억 달러(120조원)를 쏟아붓기로 했지만 이미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했다.
톰 쿠에닝 미 국방부 산하 위협제거협회 회장은 “불량국가들과 테러단체들에게 대량살상무기는 마지막 생존 카드”라며 “카드가 이미 그들의 손에 들어간 이상 다시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