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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벗어 던진 변방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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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벗어 던진 변방 콤플렉스

입력
2002.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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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대회를 마감하는 TV 뉴스는 한국팀의 4강 진출을 자축하면서 ‘숨가쁘게 달려온 한 달’이라고 평한 바 있다.그 숨가쁜 달리기를 통해서 ‘멀고 먼 동방의 작은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이 순식간에 역동적인 나라, 호랑이의 나라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에 편입된 이후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인들은 ‘변방 콤플렉스’를 유독 심하게 앓아 왔다.

게다가 치욕스러운 일본의 식민통치로 ‘패배주의’에 시달려 왔다.

이 질환은 근대 이후 전 세계에 군림하게 된 서구중심주의, 곧 서구문명의 우월성과 보편성을 상정하는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집단의식에 깊게 깔려있는 ‘변방 콤플렉스’, ‘패배주의’, ‘서구중심주의’는 월드컵 대회 기간 내내 외신보도나 외국 관광객의 찬사를 인용해 한국 축구팀의 선전에 열광한 국내 언론의 태도를 통해 역력히 표출된 바 있다.

“이제 축구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서 주변국이 아닌 중심국으로 세계 속에 당당한 대한민국이 되어야만 합니다.”

“태극전사들의 투혼이 유럽의 강호들을 격침시킬 때마다 ‘한국은 안 돼’라는 열패감을 말끔히 씻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계사에서 늘 변방에 머물러 있던 우리는 이제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각인시켰다.

더욱이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는 그의 탄생을 빛내기 위해 동방 박사의 탐방과 축원을 필요로 했지만, 월드컵을 통한 민족의 구원은 중심부에서 홀연히 강림한 서방인의 영도력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이처럼 월드컵 승리의 환호 속에는 ‘갈기갈기 찢기고 멍든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열등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러한 열등감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과거 세계 여러지역의 국가와 인민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살육한 구미와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을 동경하거나 선망하는 심리가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구가 둥글다는 평범한 진리에 따르면, 세계에 중심과 변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실학자 홍대용은 오랫동안 조선인을 사로잡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기 위해, 지구의를 돌리면서 중국이 어떻게 세계의 중심이냐고 반문한 바 있다.

오늘날 지구의를 다시 돌려보아도 유럽이나 미국이 세계의 중심은 아니다. 또 한국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의 변방은 더더욱 아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중심과 변방을 규정하는 것은 우월한 정치ㆍ경제적 힘과 문화적 헤게모니이다.

서구문명이 지배해 온 지난 200년 동안 서구인들은 중심과 주변을 판정하는 보편적 잣대를 들이밀고, 여기에 다른 국가들을 승복시켜 왔다.

그렇게 승복되었기에 우리는 한국의 바둑이나 태권도 실력이 세계 최강이어도 이를 놓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고 열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 질문을 바꿔 던지면 안 되는가? 유학을 전공하는 어느 미국 학자는 서구문명을 질책하는 말을 이렇게 던진 적이 있다.

“왜 서구는 동아시아 문명의 진보에 보조를 맞추는 데 실패했는가? 자기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자국을 다스리는데 만족하지 않고, 왜 밖으로 뛰쳐나가 주위 민족들을 괴롭히는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을 곰곰이 새겨 본다면 지난 200년 동안의 역사를 놓고 굳이 변방 콤플렉스나 패배주의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한국인들이 결코 어리석거나 부끄러운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콤플렉스는 여러 가지 경로와 계기를 통해 해소되며, 반드시 합리적인 방법으로만 해소되지 않는 법이다.

그런즉 우리 국민들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변방 콤플렉스와 패배주의를 훌훌 떨쳐버리고 새롭게 획득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운 상승의 기세를 떠받치고자 한다면, 경위야 어쨌든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닌가?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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