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박금자 편집위원미국의 대기(大氣) 화학자 마리오 몰리나 (MIT대) 교수는 1930년대부터 냉장고 냉매와 분무식 캔 추진제로 널리 쓰이던 염화불화탄소(CFC)가 성층권 자연오존을 파괴한다는 연구결과를 1974년 과학전문지 네이처를 통해 처음 밝혔다.
이 연구를 토대로 국제 사회는 1987년 CFC 사용 중단에 합의한 몬트리올 협약을 맺기에 이르렀으니, 그는 지구 오존층 보존의 최대 유공자라 할 만 하다.
멕시코 출신으로 199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몰리나 교수는 대기 오염으로 악명 높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맑은 공기 되찾기’ 프로젝트를 3년째 이끌고 있다.
세계 대도시들이 주목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대기화학 보건학 도시계획학 행정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 고급 두뇌 70여명이 참여, 멕시코시티의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풀어내고 있다.
멕시코 시티보다 나을 게 없는 서울시의 대기오염 완화를 위해 환경부가 ‘푸른 하늘21’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이즈음, 몰리나 교수를 만나 석학의 지혜를 들었다.
- 교수께서는 공기도 자원이라고 지적하시는데…
“공기는 물, 토양처럼 중요자원입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공기가 자원이라는 인식은 늦습니다. 앞으로 대기오염이 환경문제 핵심이 될 것입니다.
다른 자원은 어느 정도 선택적이지만 우리가 하루 평균 10,000~20,000 리터를 마시는 공기는 누구에게도 선택적이 아닙니다.”
- 공기가 자원이라는 것을 일찍 알고 대기화학을 연구했습니까?
“아닙니다. 1972년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칠 때까지는 분자역학을 했습니다. 그 분야는 신무기 개발과 관계가 있지요. 그 때 버클리에는 학생운동이 격렬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제기가 강했지만 근본은 사회개선을 주장하는 운동이었어요. 무기개발 연구를 걱정하는 분위기에 공감했고 과학자로서의 행위의 중요성을 절감, 대기연구로 방향을 바꿨지요.”
-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 과학ㆍ에너지 자문위원이었고, 여러 환경시민단체의 자문역을 했는데…
“정부와 사회에 과학의 결과를 알리는 것도 과학자의 책무입니다. 도식적인 연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러나 CFC가 대기에 방출되면 분리되지 않고 축적되다가 성층권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그때서야 햇볕 에너지에 의해 분자가 분리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하는 오존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대기문제는 환경문제이고 환경문제는 지구적 문제임을 알게 됐고, 기업들이 증거를 인정하고 사회가 조치를 취하도록 유엔과 국제회의에 보고서를 보내고 미 정부에 증언을 했어요. 그 후 나는 사회와 의사소통에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 멕시코시의 ‘맑은 공기 되찾기’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환경문제는 사회가 노력하면 해결됩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지역오염, 지구오염, 기후변화 모두 그렇습니다. 파괴된 오존층도 2~30년이 걸리기는 하지만 회복이 됩니다.
나를 낳고 길러준 멕시코에 무엇인가 되돌려줘야 한다는 생각과, 규모가 작은 지역오염 문제에도 하나하나 빨리 접근하자는 생각이 합쳐져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대기오염문제는 사회문제이면서 정치문제이고 산업문제입니다. 멕시코는 오염대책 결정을 소규모 정치인 집단이 결정해온 편인데, 이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이 높았어요.
대도시 대기의 주된 오염원은 자동차인데, 자동차 운행양이 증가한다고 해서 국토가 넓고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미국처럼 자동차도로 추가건설, 오염 무배출차량 개발, 배출권 거래제 등에 중점을 두는 것은 멕시코 현실에 맞지 않아요.
또 자동차 기업에도 부담을 줍니다. 1990년대 멕시코시가 실시했으나 실패한 요일별 차량 운행제 같은 강제 규제방식도 서울 같은 도시에는 적당하지 않아요.
여유 있는 사람들은 차를 한 대 더 삽니다. 따라서 어느 곳이나 오염물질 배출기준을 강화하여 깨끗한 차만 다니게 하는 것이 첫 단계가 돼야 합니다.”
- 대기오염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책결정자를 끌어들이는 것이지요. 대기화학자는 여러 지역에서 시간, 오염원, 날씨에 따라 오염물질이 어떻게 농축되는가 등의 데이터를 모아 오염원을 완벽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다음 자동차가 배출하는 오염물질 중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오존과 미세먼지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오존은 화학작용을 거쳐 형성되는 2차 오염물질이니, 오존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 질소산화물 황산화물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요.
미세먼지도 오존과 부분적으로는 같은 화학작용에 의해 형성되니까 그들 물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꼭 해야 합니다.
보건학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7분의 1밖에 되지않는 미세먼지가 인체에 축적되어 입원율뿐 아니라 사망률까지 높임을 알리고, 경제학자는 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 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기오염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시민들은 맑은 공기를 원한다.’고 정치가들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은 공개적일수록 좋습니다. 시민들이 잘 알수록 정치가는 더 적극적이 됩니다.”
- 멕시코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입니까?
“과학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법이지요. 자동차 구매를 멈추자, 교통혼잡문제를 풀자, 경유차량을 없애자, 차량에 삼원촉매장치를 달자고 그저 주장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놓고 오염저감을 위해 실천 가능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먼저 짭니다.
다음, 모델링 팀이 각각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예상저감효과를 분석합니다. 보건팀은 모델을 적용하면 줄어드는 건강 위해도(危害度)를 따지고, 경제팀은 모델 적용시 소요비용과 건강위해도 감소에 따른 사회비용을 비교합니다.
어느 모델이 어떤 장단점을 갖는지가 분명한 이 자료들을 멕시코정부에 주면, 정부가 정책 선택을 합니다. 정책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접근법입니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동차를 덜 타자는 운동을 대도시에서는 벌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기는 하지요. 그러나 생활문화가 달라져 캠페인이 큰 호소력을 갖지 못합니다. 각 도시는 대기오염 해결을 위해 저마다 다른 교통정책을 쓰고 있어요.
싱가포르, 콜롬비아는 러시 아워에는 허가 받은 차만 시내를 통과하게 한다든가, 자동차 사용에 높은 비용을 부과하는 규제방식을 선택해 효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방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없는 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 교통과 대기오염 문제를 동시에 풀려면 그런 방법들이 유용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대기오염은 깨끗한 차를 가지고 다니게 하는 것이, 교통혼잡문제는 도시가 빠르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두 문제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면 시민에게 인센티브보다 규제를 가하기 쉽습니다. 서울도 도심통행 차량에 통행료를 부과하지요?
규제의 일종인데, 규제보다는 인센티브를 주어야 시민들은 이성적으로 행동합니다. 이를테면 요일별로 차를 못 가지고 다니게 하는 것보다는 로스앤젤레스에서처럼 두 사람 이상 타는 승용차도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낫습니다.”
대기화학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항이 많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연구가 진척되는 미래로 대책 시행을 미루려 한다.
그러나 몰리나 교수는 건강과 생명, 삶의 질은 모든 것에 우선하므로 모든 대도시 대기정책 결정자는 지금 당장 맑은 공기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몰리나는 누구?
1943년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출신으로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대사를 지냈다.
멕시코 국립대를 거쳐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석사)와 미 버클리대(박사)에서 공부했다. 박사후 과정 펠로로 캘리포니아 어바인대에서 연구하면서 업적을 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셔우드 롤랑 박사와 공동 연구한 오존고갈이론은 1985년 남극대륙의 오존 홀 발견으로 증명되었고, 1995년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에는 유엔 환경상을 받았다. 그의 논문은 100편을 넘는다. 버클리 시절 만난 화학자인 부인 루이사, 동료, 제자들과의 공동 저술이 많다.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몰리나 팀에서 박사후 과정 펠로로 일하는 채여라(이화여대 졸업. 영국 캠브리지대 환경정책박사)씨는 멕시코 프로젝트에서 물리학, 화학, 기상학을 시뮬레이트하여 정보를 뽑고 시나리오 효과를 분석하는 광화학물질 모델분석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할 것이며, 이런 방법은 다른 대도시에도 원용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몰리나는 환경과 모국을 위해 과학자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미국과 멕시코 정부, NASA(미 국립항공우주국), 미 국립과학재단, 미 환경보호국 등이 멕시코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으며, 하버드대 행정대학원과 보건대학원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박금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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