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와 신조어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다.외환위기 직후 취업이 어렵던 시절, 대학졸업 예정자들은 자신들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불렀다.
취직도 못하고 주변의 눈치만 살피는 처지를 자조적으로 비유한 유행어였다. 일본의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 ‘예쁘고도 유능한 직업인’이라는 의미의 신조어 ‘페미날시스트(페미니스트+나르시스트)’가 유행한 것도 일본 직장의 풍속도를 반영하고 있다.
■올 해 미국에서 발간되는 영어사전에는 엔로니티스(Enronitis)라는 신조어가 추가될 듯 싶다.
엔론사의 분식회계가 드러난 이후 미국에서 회계부정 사건이 한 달에 한 건 꼴로 터져 나오는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Enron as it is’(엔론과 같다)를 한 단어로 축약한 이 말에는 부도덕한 기업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이 담겨있다.
어디 엔론 뿐인가. 미국 제2의 장거리 통신업체 월드컴의 분식회계 규모는 사상 최대인 38억달러 였다. 제록스도 매출을 19억달러 이상 과다 계상했음이 최근 들통났다.
■아시아 기업의 후진적 회계 행태를 비웃던 미국 기업들이 회계 부정으로 이미지를 구기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칼 하다.
매킨지와 앤더슨 등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조차 회계부정에 연루돼 구설수에 올랐다. 윤리경영을 부르짖던 기업 임원들의 내부자 거래 파문도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
심지어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 고위급 인사들에게도 기업 임원 재직시 회계부정에 가담했다는 의심어린 눈길이 쏠리고 있는 마당이다. 바야흐로 미국식 경영의 총체적 위기다.
■문제는 미국 기업의 분식회계 파장이 미국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삼성경제 연구소가 최근 “미국의 분식회계 파문으로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부실징후가 있는 기업과 국가에서 잇달아 투자와 여신을 회수해 아시아 국가에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분식회계 문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미국을 향해 ‘분식회계는 이제 그만’(No More Enronitis)이라는 구호라도 외쳐야 할 판이다.
이창민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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