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얘기는 비록 천한 일이라 하더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해서 벌되, 쓸 때 만큼은 떳떳하고 보람 있게 써야 한다는 경구이다.서양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율이라 할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지체가 높을수록 부담을 많이 진다)’라는 말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60억 가운데 12억이 하루 1달러미만으로 겨우 연명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우리가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해방과 6 .15를 거치면서 우리는 외국의 자선원조가 아니었으면 생존이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근 반세기 동안 우리가 받은 원조액은 자그마치 246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베푸는 삶은 아름답다. 나누는 일상은 더욱 보람 있는 일이다. 그럼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얼마만큼 배려하고, 또 보살피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국제사회가 우리를 보는 눈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색한 코리아’, ‘올챙이 시절을 잊은 개구리’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때로는 우리를 황당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개같이’ 벌고 있다. 교역량과 국민총생산(GDP)규모는 전세계 12~13번째다.
히딩크라는 지장(智將)을 불러들여 1년 반 동안의 고액 특별과외 끝에 월드컵 4강 신화의 꿈을 현실화했을 만큼의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정승같이’ 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많은 논란에도 선진국 사교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것은 수 년 전이다. 이젠 그에 걸맞은 책임에 대해서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그러나 우리사회엔 아직도 북녘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까지 ‘퍼주기’라며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있다.
눈만 뜨면 당리 당략적 싸움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판에 ‘퍼붓는’ 국민혈세가 한 해 얼마인데도.
지난 5월 OECD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는 우리나라의 2001년 공적개발원조(ODA)총액이 2억6600만 달러였다고 발표했다.
국민소득(GNI)의 0.063%에 해당한다. OECD 회원국중 경제규모가 비슷한 네델란드(0.82%), 스페인(0.30%), 호주(0.25%)등과 비교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또 1인당 소득수준이 비슷한 그리스(0.19%), 포르투갈(0.25%), 뉴질랜드(0.25%)등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까닭에 OECD에 가입하고도 정작 산하 주요 기구인 DAC에는 아직 발을 들이밀지 못하고 있다.
‘국가이미지쇄신제고위원회‘가 발족했다. 월드컵에서 조성된 일체감을 바탕으로 국가를 업그레이드 하려는 시도라고 한다.
‘업그레이드 코리아’를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관(官)주도로 얼마만큼의 효율성을 발휘할지 지켜 볼 일이다.
이번 월드컵을 연 420억명이 지켜봤다고 한다. 한국팀의 선전이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경제 단체들이 추산하는 우리 국가브랜드 홍보가치는 60억 달러, 기업브랜드 상승효과는 120억 달러라고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정부가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한 절호의 계기로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우리사회의 투명성 확보다. 지체가 높을 수록 더 많은 도덕적 의무를 지는 그런 사회로의 전환이 급선무인 것이다.
국민적 영웅이 된 히딩크 얼굴 한번 보려고 뙤약볕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서있는 시민들 뒤편에서 자기 아들과 사위의 기념사진 주선에 더 관심을 가진 시장이 지도층으로 있는 한 우리사회의 장래는 암담하다.
마찬가지로, 자고 나면 ‘끼리끼리 해먹은’ 죄상이 드러나는 곳에서는 ‘업그레이드’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지도층이 솔선해서 몸가짐을 바로하는 그런 속에서 만이 ‘업그레이드 코리아’는 가능하리라 확신한다.
/노진환 주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