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나 관심 분야, 혹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제각기 연구를 진행해온 국내외 한국학 학자들이 한데 모여 한국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폭넓게 논의하는 큰 자리가 마련됐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장을병)은 18~20일 국제고려학회, 유럽한국학회, 오스트랄아시아한국학회 등 해외 한국학회와 공동으로 ‘한국 문화 속의 외국 문화, 외국 문화 속의 한국 문화’를 주제로 제1회 세계 한국학 대회를 개최한다.
참가 학자 수 300여 명, 이 중 150여 명이 국외에서 참가한다. 한국학 국제학술회의로는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한국학 관련 국제학회가 공동으로 행사를 여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정문연은 특히 이번 대회를 남북한 학술교류 활성화의 계기로 삼기 위해 장 원장이 최근 방북, 태형철 북한 사회과학원장을 초청했으며 현재 북한 측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베르너 삿세 유럽한국학회 회장이 ‘한국학의 지평 확대’, 정해창 정문연 대학원장이 ‘현대에 있어서 상호성과 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하고, 역사 문학 예술ㆍ민속 언어 등 9개 분야에서 1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발표 논문은 신청 받은 300여 편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정했는데, 일부 저명학자는 심사에 탈락하자 항의하기도 하는 등 참여 열기가 뜨겁다.
정문연은 또 학술대회의 질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 과거 국내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열 경우 주최측에서 제반 경비를 대던 관행을 과감히 깼다. 발표자를 포함한 300여 명의 참가자 전원에게 등록비를 받았고, 숙박비와 문화답사 참가비 등도 본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길상 정문연 국제협력처장은 “특히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소장 학자들이 대거 참여키로 해 그동안 일부 친한파 지식인과 재외동포 학자들이 주축이 됐던 해외 한국학 연구의 저변 확대와 학문적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문연은 대회 기간 중 장서각 소장 희귀 고서 전시회와 조선시대 선비의상 전시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취화선’ 상영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 계획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방북후 귀국 장을병 원장
“북한 학자들도 남북한 학술 교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정치적 상황이 개선되면 학술 분야 교류도 급진전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1회 세계 한국학 대회에 북한 학자들을 초청하기 위해 2~6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장을병 정신문화연구원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서해교전 직후라 다소 긴장했지만 예상 외의 환대를 받았고 북한 학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장 원장은 방북 기간 중 태형철 북한 사회과학원장과 세 차례 만나 세계 한국학 대회 초청과 내년 제2회 대회의 평양 개최, 고전 국역 등의 공동 연구 확대 등을 제안했다.
북한 측은 내부 논의를 거쳐 10일께 결과를 회신하기로 했다. 북한 학자들이 세계 한국학 대회에 참가할 경우 역사 언어 사상ㆍ종교 3개 분야에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해교전 탓에 당장 태형철 원장 등이 참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장 원장은 “하지만 직접 만나본 북한 학자 10여 명이 학술 교류와 발해사 및 독도 문제의 공동 연구 제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고위층 사이에서도 한ㆍ일 월드컵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면서 “상당수 인사가 안정환 등 골을 넣은 선수들의 이름과 한국팀의 경기 내용, 골을 넣은 시각까지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장 원장은 “북한 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면서 “학술 교류 활성화가 통일을 앞당기는 단초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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