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패니메이션’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말한다. 미국도 애니메이션이 유명하지만 따로 지칭하는 말은 없는데 왜 하필 일본 것만 독특한 이름이 붙었을까?재패니메이션이라는 말은 80년대 초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라는 작품이 북미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만큼 해외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과 일본 만화를 자국 것과는 달리 보는 다른 나라의 시각을 감지할 수 잇다.
재패니메이션은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과 비교해보면 컴퓨터그래픽이나 자본력이 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신비하고 탄탄한 줄거리와 친근한 인물설정으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재페니메이션의 꽃. 미야자키 감독은 ‘이웃집 토토로’나 ‘원령 공주’에서 일본 전통의 설화를 차용하는가 하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통해서는 자연과의 친화력을 일깨워주면서 재패니메이션을 일본의 국보급 문화로 격상시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상영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그런 전략이 고스란히 반영된 미야자키식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일단 미야자키의 작품에는 대부분의 주인공이 여성이다.
그는 여자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힘은 폭력이 아닌 ‘이해와 대화’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특히 ‘센과…’의 소녀 주인공 치히로는 미야자키의 다른 주인공들, 마녀 배달부 키키나 원령공주에 비해 매우 평범하며 별다른 재주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것은 거꾸로 전 일본인들이 가진 것.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온천 여관의 종업원이 된 그녀는 오직 특유의 성실함과 장인 정신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해 나아간다.
여기에 그는 다시 한번 일본 고유의 애니미즘적인 사고와 애니메이션적인 상상력을 결합시켜 아부라야 온천에 온갖 귀신들을 결집시키는 장관을 연출한다. (일본은 800만신이라고 해서 모든 자연에는 신이 있다고 믿고 있다.)
미야자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재패니메이션이란 판타지를 통해 현재 일본인을 비추어주는 새로운 거울로써 센과 치히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다 돼지가 되는 치히로의 부모나 돈 한푼이라면 어떤 손님도 마다 않는 온천장의 주인 유바바, 또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끊임없이 금을 토하는 얼굴 없는 귀신은 진정한 대면관계는 사라지고 자본주의적인 교환가치에 의해 주변의 타자를 게걸스럽게 포섭하는 일본인들의 자화상은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재패니메이션을 일본문화 유산을 집결하는 판타지로서 뿐 아니라 다시 일본인들의 욕망을 재현하는 장소로 통합하고 있다.
‘센과 …’은 표면적으로는 관객에게 다가가는 신비한 모험담으로 비추어지지만 그 속내를 보자면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일본에 대한 미야자키의 일종의 정신문화 회복운동으로까지 읽혀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평론가ㆍcha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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