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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35)金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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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35)金日成

입력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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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8일 북한 주석 김일성이 82세로 사망했다. 당시 대통령 김영삼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불과 보름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첫 남북 정상회담은 2000년 6월까지 미뤄졌다.분단 시대의 한반도에서 김일성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도 찾기 힘들다. 북한에서 그는 온갖 신화적 아우라에 감싸인 신인(神人)이다.

북한의 한 문헌에 따르면 그는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 영웅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로동 운동의 탁월한 령도자이시며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다.

반면에 남한의 일반 시민들에게 그는 오래도록 ‘가짜 김일성’이었고, 그가 1930년대에 항일 무장 투쟁을 한 그 김일성임이 밝혀진 뒤에도 고작 한국 전쟁을 일으킨 전쟁 범죄자이거나 스탈린을 능가하는 독재자일 뿐이었다.

김일성은 1912년 4월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지금의 만경대)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7년 함경남도 혜산 부근의 보천보 전투에서 정점을 이루는 20대의 항일 게릴라 활동은 해방 뒤 그의 가장 미더운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그는 1946년 2월8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된 뒤 죽음에 이르기까지 48년간 북한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다.

치열한 권력 투쟁을 통해 반대파 숙청을 완전히 마무리한 1967년 이래 김일성은 힘의 집중과 개인 숭배의 정도에서 역사 속의 모든 독재자를 제칠 만한 전제적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의 유일지도 체제를 이념적으로 떠받친 것은 1970년대 이래의 주체사상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 주체사상의 나라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이 허용됐던 사람은 인민대중이 아니라 오직 ‘인민대중의 뇌수’ 뿐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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