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감독이 7일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아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 감독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대표팀 막내 박지성(21ㆍ교토)이 국민과 선수들을 대신해 히딩크 감독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편집자주To:히딩크 감독님께
할아버지를 만난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동안 한국대표팀을 맡아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선수들에게는 내색도 안 하시고 묵묵히 지도해 주셔서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만들어 주신 거 정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큰 영광을 그라운드에서 느끼게 해 주신 점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자상함과 축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카리스마는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포르투갈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서 저는 결승골을 뽑아낸 뒤 벤치로 달려가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었죠. 사람들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포옹하는 자연스럽고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얘기하지만 저는 감독님이 할아버지처럼 느껴져요.
사실 그땐 할아버지가 먼저 제게 달려오라는 사인을 보내셨죠. 골이 들어가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벤치를 바라보는 데 감독님이 기쁨에 넘쳐 손짓을 했고 저는 “할아버지가 나를 찾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송종국형도 감독님이 잘못을 지적할 땐 호랑이 같지만 농담과 쇼맨십을 섞어가며 부드럽게 사기를 북돋을 때는 할아버지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곤 했지요.
감독님이 제 이름을 처음 불러주신 때를 기억하세요. 감독님이 사령탑을 맡으신 지 보름 남짓한 작년 1월말 우리는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했지요.
어느날인가 선배 형들은 모두 외출을 했고 저는 하릴없이 호텔 로비를 어슬렁거렸죠. 그때 감독님이 다가와 “지성, 나이트클럽 가는데 같이 가자”고 권했죠.
심심해 보이는 제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저는 굉장한 편안함과 함께 “감독님이 내게 큰 관심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곤 자신감이 생겨 났어요. 그 이후에도 감독님은 대표팀 막내인 저에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죠.
사실 저는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감독님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전술ㆍ전략을 이해하는 데는 적잖이 힘들었어요. 또 포지션에 따른 전술변화와 세밀한 마무리를 지적해주신 감독님의 뜻에 맞추기 위해 무척 애를 썼구요. 그래서 이제는 축구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아요.
이제 할아버지는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뵐 날이 오리라 믿고 있어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저도 조금은 더 성장했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훈련을 쌓아 유럽무대에 당당히 서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할아버지와도 만날 수 있잖아요.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할아버지가 어느 길을 택하시더라도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생활이 좋은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시기를 빕니다.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독님 화이팅.
/박지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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