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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 (5·끝)달라지는 해외동포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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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 (5·끝)달라지는 해외동포 위상

입력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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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사회에서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자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모처럼 느끼는 동질성은 특히 조국에서와 똑 같은 양상으로 벌어진 응원전 덕분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처음에는 한인상가 밀집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응원이 이루어졌으나 게임을 거듭할수록 장소와 숫자가 늘어났다.

압권은 6월 29일 터키와의 3ㆍ4위전. 미 프로농구팀 LA 레이커스의 홈 구장 스테이플스 센터를 통째로 빌려 2만여 명이 합동응원에 나섰다.

이곳은 하루 임대료만 15만 달러로 특정 인종의 행사에 임대해준 적이 없었으나 응원 열기에 감동한 LA 시의원들이 구장주에게 협조를 요청해 무료로 빌렸다.

하나되는 응원은 일본과 중국, 유럽, 중남미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베이징(北京) 등 중국에서는 북한 주민들까지 “북조선의 날쌘 선수 3명만 함께 했으면 독일을 이기고 브라질과 결승을 다툴 수 있었다”며 한국 축구를 함께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아웃사이더나 트러블메이커 이미지로 주눅들었던 동포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마음껏 외치고 태극기를 휘둘렀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은 누구나 주변 일본인들로부터 “대~한민국, 오메데토(축하한다)”라는 인사를 수없이 받았다.

현지 언론들의 한국 관련 보도도 동포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권위지들은 한국팀의 뛰어난 플레이와 함께 한국인들의 건강한 응원 열기를 호평했다.

LA 타임스는 “한국팀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모범사례”라고 평가했고, USA 투데이는 월드컵 총평기사에서 가장 밝은 기사 1순위로 한국의 열광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응원을 꼽았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월드컵 총정리 기사에서 “한국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일본이나 중국의 그늘에 가려 있던 한국이 한 달 동안 화제가 됐다”고 평했다.

한국인들의 역동성은 일본인들이 일본팀 탈락 후에도 한국팀을 응원하게 만드는 흡인력으로 작용했다. 도쿄(東京)신문은 사설에서 “일본인들이 ‘아시아의 꿈을 한국에’ ‘일본 몫까지 열심히 해달라’며 응원한 것은 전후 처음일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베트남에서는 월드컵 이후 TV에 한국 드라마 수가 부쩍 늘어 현지 신문이 ‘한국 드라마가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비판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배철은(47) 재일 민단 선전국장은 “한국팀 경기때마다 대형 태극기로 만든 망토를 입고 응원을 나갔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월드컵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가는 데 엄청난 용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강상윤 LA 한인회 이사장은 “혀꼬부라진 소리로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한국인으로 낳아준 부모님이 고맙다’고 하는 교포 2세들을 보고 감동했다”며 “월드컵은 교민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1세와 2세 사이의 틈새를 좁혔다”고 지적했다.

월드컵으로 높아진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는 앞으로 경제,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상당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 KOTRA 브라질 상파울루 무역관장은 “지하철을 타면 브라질 사람들이 꼬레아에서 왔느냐고 관심을 보이며 축구 이야기를 꺼낸다”며 “높아진 이미지가 일과성에 그치지 않도록 어떻게 좋은 성과로 연결시키느냐가 과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남미에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선진국과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으며 정보기술, 자동차 분야 등의 발전상에 주목하고 있다.

허준오(46) 현대자동차 일본판매법인 부장은 “회사에서 일본인 직원과 한국인 직원이 일본팀과 한국팀을 함께 응원하는 모습을 NHK 방송이 방영하는 등 월드컵 효과는 최고”라며 “브랜드 이미지가 2배 이상은 올랐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성철 주미대사는 “이제 월드컵의 열기를 동포사회의 단결과 여러 분야별 성과로 증폭시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베이징ㆍ워싱턴ㆍ도쿄=송대수 dssong@hk.co.kr

윤승용 syyoon@hk.co.kr

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민단 조총련 '한마음'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일자에서 “남조선팀이 월드컵에서 세계 4위를 쟁취하고 우리 민족의 기개를 떨쳤다”면서 “남조선 대표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오른 것은 한 핏줄인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감격을, 민족적 긍지를 안겨주었다”고 아낌없는 축하를 보냈다.

월드컵은 민단과 조총련이 정치를 떠나 모처럼 하나가 되는 소중한 기회였다. 양측은 대회 기간에 개막식과 한국팀 주요 경기에 모두 1,500명 규모의 ‘재일동포참관단’을 보냈다. 이중 300명 가량이 조총련계 동포였다.

지금까지 민단의 ‘모국방문단’과 조총련의 ‘고향방문단’ 등 두 단체가 별도로 한국에 방문단을 보낸 적은 있지만 공동으로 방문단이 다녀온 것은 처음이다.

조총련측에서 북한이 참가하지 않았고 남북 단일팀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동응원단’이 아니라 ‘참관단’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경기장에서 조총련측 인사들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팀과 일본팀의 경기를 응원하며 만들어진 한ㆍ일 공동응원단 ‘KJ 클럽’ 회원 300여명 중에도 조총련계 동포가 다수 참여해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응원을 보냈다.

일본의 각 개최도시에서 활약한 자원봉사자 모임에서도 민단과 조총련계 동포들은 거리낌없이 협력하며 한국팀의 선전을 응원했다.

민단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기장에서 민단과 조총련 간부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보면서 정치와 관계 없는 재일동포 복지를 위한 활동은 함께 해나가자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코리아타운의 한 식당 주인은 “조총련계 동포들이 TV 중계를 보며 응원을 보내다가 자기도 모르게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몇 차례나 보았다”며 “월드컵이 최소한 일본에서는 남북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伊·中선 '反韓' 역풍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로 한국, 한국인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러나 해외 동포들로서는 마냥 즐거워만 할 처지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유학생 신모(30ㆍ여)씨는 인터넷 사이트에 “월드컵 함성이 사라진 이후 친하던 이탈리아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탈리아에서는 16강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안겨준 한국에 대한 반감이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안정환 선수를 방출하겠다고 한 페루자 구단처럼 집주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당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그나마 이탈리아 교민들은 현지 TV 등에서 자국 축구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일부 스포츠신문에서는 여전히 ‘2002 월드컵의 오점은 한국의 심판 매수’, ‘그래도 한국은 이탈리아 명품에 목을 맨다’ 등 반한감정을 숨기지 않아 동포사회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4강 신화에 또 하나의 희생양이 됐던 스페인의 동포들도 표정관리가 쉽지 않다. 4강전 이후 외출을 자제하고 즐겨 입던 붉은 색 셔츠를 입는 것도 가급적 삼갔다.

라망가 지역 교민회장 안경희(48ㆍ여)씨는 “스페인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4강의 기쁨을 즐기려 하고 있다”면서 “위축되기보다는 당당히 실력으로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교민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교민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의 4강 진출에 박수를 보낸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중국은 한국 축구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면서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 언론의 심사가 뒤틀린 듯한 기사는 물론이고 한국 응원장에 계란이 날아오고 일부 학교에서는 붉은 응원복을 불태우거나 몸싸움이 벌이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중국의 한반도연구소 신모(41) 연구원은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은 축구팬들에 국한된 문제로 중국 축구의 불만 해소 대상이 한국이 됐다”며 이번 일로 중국인들과 골이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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