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지 않고 자리보전만 하려는 ‘철밥통’ 사고부터 깨부숴라.”공무원 조직과 다름없는 국책 금융기관 산업은행이 변화의 격랑에 휩싸였다. 정건용 총재의 이른바 ‘철밥통 혁파론’이 진원지다. 연공서열에 따라 봉급도 받고, 승진도 하는 문화에 익숙했던 산업은행 직원들은 정 총재의 개혁 드라이브에 사뭇 동요하는 분위기다.
정 총재는 최근 수익을 못 내는 은행지점을 과감히 폐쇄해 나가겠다고 선언,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산업은행의 전국 지점이 36곳에 불과한데다 은행 설립 이래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일선지점을 인위적으로 폐쇄한 사례가 없기 때문.
처음엔 엄포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직원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첫 희생양은 강원도 내 유일한 산업은행 영업점인 삼척지점.
최근 수년 동안 매년 5억~10억원의 적자를 내오던 이 지점은 정 총재의 지시로 8월 2일 문을 닫게 됐다. 은행 노조는 물론 삼척시장에 도지사까지 나서 강력 반대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은행 관계자는 “업무부담 없이 편하게 순환근무하러 가는 곳으로 여겨지던 일부 지방지점들이 제2의 타깃이 될 전망”이라며 “이젠 살아 남기 위해서도 모든 직원들이 발벗고 뛰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정 총재는 해외지점 파견근무에도 파격적인 책임경영 원리를 도입했다. 조만간 산업은행 해외법인으로 편입될 예정인 대우헝가리은행의 지사장(CEO) 자리를 인선하면서 종전의 ‘파견 근무’ 방식을 아예 폐지하기로 한 것. 대신 지사장 희망자는 은행에 사표를 쓰고 현지근무를 하도록 했다.
순환근무 형태로 현지에서 2~3년 근무한 뒤 복귀하는 종전 관행으로는 책임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모 1급 부장이 정식 퇴직절차를 걸쳐 내달 중 대우헝가리은행 사장으로 ‘재영입’될 예정이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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