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환경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1976년 9월 안양교도소에서였다.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나는 비슷한 시기에 구속됐던 동료 40여명과 감옥에서 몰래 토론하면서 내 전공인 화학을 살려 환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결심을 굳히고 감옥생활을 하던 이듬해 어느날, 나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등 발행)이 번역, 출간된 사실을 알고 가족에게 그 책을 구해 넣어달라고 했다.
당시 국내에는 환경 서적이 전무했기 때문에 영어나 일본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침묵의 봄’ 번역본을 구한 나는 진공청소기에 먼지가 빨려 들어가듯 책에 매료됐다.
농약의 남용으로 봄이 와도 새 소리 들리지 않고, 닭이 알을 낳았지만 병아리가 부화되지 않으며, 사과나무도 꽃은 피지만 수정이 안돼 열매가 열리지 않고, 시냇물 물고기가 죽어 낚시꾼도 보이지 않는 ‘침묵의 봄’이 되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었다.
책은 올해로 출간 40년이 됐다. 이 책은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결정타로 평가받고 있으며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이 책의 출간 일을 현대 환경운동이 시작된 날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석학 100인이 뽑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출간 초기 언론과 농약제조업자들은 농약이 식량 생산에 큰 도움을 주는데도 불구, 이 책이 잘못된 주장을 폈다고 주장하고 저자를 ‘자신이 저주하는 살충제보다 더 독한 여자’라고 비난했다.
그 뒤 교도소에서 나온 나는 환경단체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다 아내를 만났다. 그는 농민운동가로 농촌현장을 다녔고 나는 공해현장을 누볐다.
당시 나는 ‘침묵의 봄’과 일본 원서인 ‘농약공해’를 빌려주었다.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였다.
그 후 결혼했고 환경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가장 먼저 접근한 것이 농약공해문제였다. ‘벌레는 못잡고 사람잡는 농약’이라는 자료집을 내고 수입 농산물의 농약 잔류 문제를 사회문제화했다.
유기농업 활성화를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당시의 노력을 바탕으로 내가 일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은 환경친화적 농산물과 공산품을 공급하는 에코 생협을 준비중이다.
이 모든 것은 ‘침묵의 봄’에서 받은 감동이 근간이 됐다.
/최 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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