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제국' 로버트 D.매닝 지음ㆍ강남규 옮김신용카드는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지어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도 몇 장씩 갖고 있을 정도다.
2000년 초 기준으로 미국인은 1인당 10장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금년 5월말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4.3장의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카드로 인해 부채를 지게 되고, 거기서 헤어나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까지 비일비재해졌다.
미국 휴스턴대 법률센터 수석연구원 로버트 D. 매닝의 ‘신용카드제국’은 미국인이 신용카드 사용에 중독되는 과정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가 15년간 카드 빚에 몰려 파산을 선언한 수백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2000년말 미국서 출판했다.
책은 미국인들이 신용카드의 덫에 걸려든 원인과 결과를 역사적 맥락에서 추적하고 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파견근무제 도입, 복지 후퇴 등의 정책을 펼친다.
이로 인해 중산층과 서민 대부분은 실질 소득이 줄고 실직자로 전락했는데 이들은 신용카드를 통해 화급한 생계를 유지하게 됐다.
신용카드가 없었다면 친척이나 은행 직원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신용카드는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부드럽게 해결해주었다.
1980년대 남미 등의 외채 위기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미국 금융회사들은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하는 소매금융에 뛰어들어 손실 만회를 노린다.
그들은 공격적 마케팅을 펴고 대학생과 연금생활자인 노인에게까지 침투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카드 빚은 80년 395달러에서 90년 2,350달러로 5.9배나 늘어난다.
하지만 신용카드 이자율은 81년 1.4%에서 92년 14.3%로 껑충뛰어 카드사의 배를 불렸다.
카드사용의 증가는 ‘번만큼 쓴다’는 청교도적 윤리의식을 붕괴시키고 충동적인 소비에 탐닉하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조장된 소비의 덫에 걸려들고 신용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신용카드와 그에 따른 부채 및 신용 문제를 개인의 낭비벽으로 돌리는 경향이 적지 않지만, 이 책대로라면 그것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차원의 문제가 된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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