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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현대음악제 참석 재독 작곡가 박영희씨 "한국정신에서 작곡의 영감을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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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현대음악제 참석 재독 작곡가 박영희씨 "한국정신에서 작곡의 영감을 얻었죠"

입력
2002.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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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윤이상 이후 최고의 한국인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희(57ㆍ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교수)씨가 대구국제현대음악제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3~5일 대구 영남대 음대 영음홀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서 박씨는 작품연주회와 세미나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소개하고 젊은 작곡가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독일에서 TV로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저도 붉은 티셔츠 입고 응원하면서 봤는데, 가장 기쁜 것이 길거리 응원에 나선 젊은이들의 밝고 행복한 표정이었어요.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어깨가 으쓱해졌답니다."

그의 인상은 대가의 풍모라기보다 보통 아줌마 같다. 작달막한 키에 겸손함과 소박함이 상대방에게 푸근하게 다가온다.

독일로 간지 28년째. 충북 청주 출신으로 서울대ㆍ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정부의 학술교류 장학생으로 선발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했다.

1980년 유명한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오케스트라 작품 '소리'를 발표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94년 독일어권 전체를 통틀어 최초의 여자 정교수가 되어 브레멘 국립예술대 작곡과를 맡았다.

1년 중 4~5개월은 이탈리아 파니칼레의 집에 칩거하며 작곡에 전념한다.

유럽에서 박씨는 '영희 박-파안'(Younghi Pagh-Paan)을 모르면 문화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유명하다.

'파안(琶案)’은 박씨 성의 다른 사람과 혼동하는 외국인이 많아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 ‘책상 위의 비파’라는 뜻이 음악적이다.

'파안대소(破顔大笑)'의 ‘파안’을 떠올리며 "내 음악을 듣는 사람 중 단 2%라도 미소 짓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하는 바람도 담았다.

그의 작품은 여성적 섬세함과 남성적 힘의 조화로 특별한 카리스마를 띠고 있다. 구조적인 면을 강조해 매우 논리적이다.

'노래' '만남' '타령' '지신굿' 등 작품에 우리말 제목을 즐겨 붙이는 그는 농악이나 굿음악, 판소리 등 한국 전통음악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리듬이나 선율, 악기를 소재로 이용하는 건 아니고 "한국 정신 자체를 가져오려 애쓴다."

정 철, 천상병, 김지하 등의 시와 노자, 장자에도 심취했던 그는 최근 4년간 그리스신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2000년 하노버 엑스포 위촉으로 작곡한 '이오'가 그 첫 결실. 제우스신의 사랑 때문에 헤라의 질투를 사서 황소가 되어 유럽 대륙을 도망쳐다닌 여인이다.

"이오는 최초의 방랑자이고 이방인이지요. 전세계적으로 외국인 차별이 심해지고 있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문화는 우물처럼 고여있는 게 아니고 흘러가는 것,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사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지요."

그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동양 여성으로 살면서 예술가로 인정받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터.

"독일에서 보낸 세월을 돌아보면 숨이 콱 막힌다"는 그는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산 시간이 내 인생에서 1년 더 많은데, 이게 지나면 참 섭섭할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이번 방한에서도 음악제 참가 외에는 공식 일정 없이 가족, 친지를 만나본 뒤 10일 출국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음악출판의 세계적 명문 리코르디에서 출판되고 있다. 주요 현대음악제마다 거의 빠짐없이 그에게 작품을 위촉해 연주하고 있다.

현재 현대 오페라로는 독일 최고를 자랑하는 슈투트가르트 극장의 위촉으로 첫 오페라를 쓰고 있다.

그에게 작곡은 곧 삶이다. "독일 여성 화가 케테 콜비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은 의무'라고. 작곡을 안해도 지금처럼 명랑하게 살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작곡은 제 의무입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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