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FIFA랭킹이 22위로 껑충 뛰었다. 한국과 한국팀에 대한 해외언론의 찬사도 매일같이 들려와 귀를 즐겁게 한다.특히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 일본은 월드컵이 개최된 나라’라는 비교평가는 팀성적이나 대회운영, 국민 전체의 분위기에서 공동개최국 일본을 압도했음을 알게 해준다.
지금 전국에서는 월드컵 4위를 자축하고 한국축구의 은인 히딩크를 길이 기억하려는 취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광주는 시내의 한 도로를 히딩크로로 이름짓기로 했으며 인천에서는 맥아더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에 히딩크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몇 대학은 히딩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훈장과 함께 명예국민증을 받은 히딩크는 서울시의 명예시민도 됐다.
그러나 앞 다투어 벌어지는 기념행사 중에는 불필요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 많다. 단체장 취임과 함께 새로 출범한 각 지자체의 경쟁적인 ‘히딩크사업’은 실소를 자아낸다.
대구의 한 구청은 월드컵 전에 착공한 공원을 갑자기 ‘히딩크공원’으로 부르기로 했다가 반대에 부딪혔다.
월드컵경기장의 관할 구청도 아니고 히딩크의 소맷자락도 스치지 않은 곳이다.
황선홍가, 박지성로, 유상철거리 식으로 길에 선수들의 이름을 붙이자는 논의도 무성하다.
우리나라는 영종도에 새로 지은 공항의 명칭을 현상공모한 끝에 세종공항이라는 이름을 얻고도 인천시민들의 반발로 인천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인 전력이 있다.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다지 달라질 수 있을까. 서울시장은 명예시민증을 주면서 가족들에게 히딩크와 기념촬영을 하게 하느라 그의 다음 스케줄을 방해하는 해프닝도 벌였다.
경쟁적이고 외부발산적인 행사와 사업을 지켜 보면서 냄비체질, 군중심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식의 행태는 월드컵 4위의 내면화 자기화 체화(體化)를 오히려 방해한다.
지금은 차분하게 월드컵이 남긴 과제를 정리하고 대한민국의 지향할 바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히딩크는 앞으로도 한국축구의 발전을 돕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일단 떠난 사람이다.
전임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후임 대통령의 일에 용훼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의 말대로 누가 차기 감독이 되든 한국축구의 수준을 유지ㆍ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한국축구의 유럽대표부 대표쯤으로 생각하자.
그 엄청났던 거리의 붉은 물결에 대해서도 아름답고 자랑스럽기만 한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붉은 물결로 표출된 전체주의와 군중심리에 전율을 느꼈다는 사람도 많다.
고대 로마시대에 전쟁에서 이긴 장군은 얼굴을 붉게 칠한 채 전리품과 포로를 이끌고 개선행진을 했다.
오늘날의 카 퍼레이드다. 그 때 시종이 옆에 서서 “당신도 곧 죽는다”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승리에 도취해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이다.
서울 강남에서 광화문까지 그 긴 카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동안 이런 생각도 함께 했어야 한다.
해방 이후부터 중층 갈등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늘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한 만능열쇠를 찾아왔다.
1980년대에는 올림픽이 만능열쇠였다. 그러다가 월드컵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요즘은 히딩크가 만능열쇠처럼 돼 버렸다.
그러나 만능열쇠는 없다. 히딩크는 자기들 편하고 유리하게 마구 쓸 수 있는 자가용같은 물건이 아니다.
바둑을 두려면 정석부터 배워야 한다. 정석은 무조건 외워야 다음 행마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외운 다음에는 잊어 버리라는 기훈(棋訓)이 있다.
정석에 얽매이면 창의적인 바둑을 둘 수 없고 더 이상의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가(禪家)에도 ‘부처를 죽이라’는 화두가 있다.
이제 히딩크를 외우고 그를 잊어라. 기본에의 충실, 기초체력 다지기, 능력과 실력 존중, 일관성있는 추진 등은 우리가 몰라서 하지 않은 일들이 아니다.
자연인 히딩크에 얽매이지 말고 그의 메시지를 내면화ㆍ자기화하여 실천하는 것이 진정으로 히딩크를 기억하는 일이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