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끝났지만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직장이나 학교 등 조직의 칸막이를 벗어나 정보와 친분을 나누는 파티는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 전부터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터. 월드컵은 약간은 생소했던 파티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월드컵 기간 중 전국이 즉석 파티장으로 변한 것이다. 주최자와 초청장은 없지만 어느 파티보다 유쾌하고 신나는 파티였다.
기업체의 런칭파티나 웨딩파티 등을 주로 기획하는 손진기(예솔문화그룹대표)씨는 “잔치는 끝났지만 새로운 관계 형성의 장(場)인 파티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진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월드컵으로 인한 동적인 에너지가 일부 계층에 한정됐던 파티문화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의 잔치문화가 좌식의 정적인 형태였다면 월드컵 때의 길거리 응원이나 카퍼레이드 등에서 나타나는 동적인 에너지는 서양에서의 스탠딩 파티와 맞아 떨어진다.
월드컵 기간 중 관전자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동류의식도 이때까지의 파티에서 나타났던 어색함을 한 번에 날려보내는 역할을 했다.
손씨는 “파티의 핵심은 함께 어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파티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넓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는 사람끼리 파티장에 가서 똘똘 뭉쳐 다니는 것은 금물.
어색해 하는 참석자들이 마음 편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최 측의 배려가 필요하다. 즉석 이벤트나 퀴즈대회 등 손님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이벤트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티는 특별한 사람들의 돈드는 행사만은 아니다.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고 있는 방송작가 이정근씨는 “누구나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멋지게 연출하는 것이 파티”라고 말한다.
각자 준비한 음식을 나누면서 즐기는 포트락파티에서 비슷한 직종의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파티, 연극인이나 화랑주 등이 후원회 멤버나 팬들을 위해 마련하는 서비스 차원의 파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티를 소개한다.
■이벤트파티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지난 달 회사원 박모씨는 재미있는 파티 초청장을 받았다.
신사동의 사진스튜디오 ‘기센’이 주최한 이 파티의 초청장은 미화 3만 달러와 함께 돌돌 말려 필름통에 담겨져 있었다.
물론 돈은 달러를 복사한 가짜돈. 파티장에 차려져 있는 김밥 한 접시에 1,000달러 칵테일 한 잔에 5,000달러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비용 5,000달러 등 파티를 즐기는 데 충분한 액수이다.
주최자가 돈을 뿌린다고 해서 일명 ‘화폐파티’다. 여기서 돈은 쭈뼛쭈뼛해 하는 참석자들의 긴장을 풀고 파티에 빠져들게 하는 장치이다.
초청장에는 파티 참석자들의 엄수사항이 열거돼 있다. ‘비싼 차 끌고 오기 없기’ ‘같이 와도 따로따로 놀기’ ‘한 사람 찍으면 끝까지 가기’ ‘즐기되 옷 벗기 없기’ ‘받은 돈 다 쓰기’등이다.
이 문구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교제를 즐기며 인맥을 넓힌다는 파티의 원래 의미를 숙지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팬서비스를 겸한 파티
청담동 박여숙화랑이 지난 4월 처음으로 파티를 열게 된 것은 ‘화랑문턱을 낮추자’는 의도에서였다.
미술애호가나 사업가 등 다소 점잖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파티라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봐 고심했다. 이 때문에 파티의 테마를 정하고 미리 파티 진행자를 뽑는 등 세심한 준비를 했다.
‘봄’을 테마로 파티장을 꽃으로 장식하고 참석자에게 꽃을 달아줬다. 참석자 가운데 추첨으로 신랑 신부 주례 등을 선정, 즉석결혼식 ‘꽃피는 날 나 시집가요’를 연출했다.
사회자의 재치는 파티분위기를 더욱 달뜨게 했다. 인사치레로 참석한 손님들은 처음엔 어색해 하더니 돌아갈 때는 “다음에도 꼭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네트워킹을 위한 파티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강태안씨는 같은 일을 하는 홍보담당자끼리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고 있다.
각자 와인이나 샐러드, 과일, 디저트 등을 준비하는 포트락파티로 주최자의 부담을 줄였다.
정원에 바비큐그릴을 놓고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나누면 성대한 가든파티가 된다.
친목을 다지고 업계 정보도 나누자는 목적이어서 ‘매번 새로운 사람을 한 명씩 동반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파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테마파티
파티가 꼭 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장소를 이동하며 하루를 즐기는 파티도 재미있다.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오창현(예성형외과 원장)씨는 동료 의사들과 함께 ‘미래여행’을 테마로 독특한 파티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이른 아침 함께 서울을 떠났다. 1시간 정도 차를 달린 뒤 도착한 곳은 이들의 대본에 의하면 10년 뒤인 2012년이다.
차를 마시며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얘기했다. 다시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2022년. 정년이 됐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목표를 나눈다.
이렇게 미래로 여행한 뒤 서울로 돌아오면 이들은 갑자기 다시 젊어진 느낌과 함께 보다 견실한 미래를 위한 각오를 얻게 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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