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 도시화가 막 진행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사람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마을에 날아드는 황새가 늘어나면 집집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의 숫자도 따라 늘어나는 것이었다. 앗, 그렇다면, 황새가 아기를 점지해 주는 서양의 삼신할멈?
하지만 이 ‘황새와 신생아’ 이야기는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는’ 대표적인 논리적 오류로 꼽힌다.
황새와 신생아 사이에는 도시의 크기라는 또다른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 커지면 굴뚝이 늘어나고 따뜻한 굴뚝 위에 둥지를 틀기 위해 황새가 많이 날아들게 된다.
큰 도시에 사람이 바글거리고, 아이들도 많이 태어날 것은 뻔한 이치다. 황새도, 아기도 도시화에 따라 늘어났을 뿐, 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얼마 전 몇몇 신문의 한 귀퉁이에 실린 소식 하나가 이 오래된 오류를 떠올리게 했다. ‘월드컵이 있는 해마다 여성들의 국가고시 합격율이 높아진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월드컵이 열리는 4년 주기마다 여성들이 국가고시에 예년보다 많이 합격하는 것은 월드컵에 온통 마음을 뺏기는 남성들에 비해 차분하게 시험 준비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도 하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월드컵에 남자들과 똑같이, 아니 더 뜨겁게 열광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하지만 지난 월드컵이 열렸던 1998년이나 94년, 혹은 90년에 월드컵이 아닌 다른 변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한 기사에는 98년에는 IMF라는 특수상황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긴 하다.
한 후배는 이같은 시각엔 여전히 여성에 대한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고 흥분했다. 남자가 잘 되면 다 자기네들 덕이고 여자가 잘 되면 남자가 한눈을 팔아 그 덕을 본 것이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으로 이런 편견도 끝일 듯 싶다. 모든 매스컴이 월드컵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앞다투어 다룰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도 다양하게 제시된다. 몸과 몸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원시적 매력, 베컴과 안정환 등 꽃미남의 존재들, 부엌에만 갇혀 살던 여성들이 모처럼 맛본 해방감, 한눈에 알 수 있는 쉬운 경기규칙….
인류의 가슴에 뜨겁게 흐르고 있는 전쟁에의 본능이 축구처럼 극명하게 살아있는 운동경기도 따로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그럴 듯하다. 우리는 대표팀을 태극 ‘전사’로, 히딩크 감독을 덕장, 운장 등 ‘장수’에 비기고 있으니까.
거리응원단 2,193만(연인원)명중 3분의 2가 여성이라는 보도를 보며 올해의 수능이나 내년도 사법시험의 남녀 점수 분포가 궁금해졌다.
이번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우세하면 어떤 해석이 등장하려나. 한눈은 여자들이 더 많이 팔았는데 말이다.
/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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