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피의 비극의 씨앗을 방치해둘 수는 없다.’ 채 피지도 못한 장병들의 목숨을 송두리째 앗아간 서해교전이 또 발발하면서 분단의 원죄와도 같은 북방한계선(NLLㆍNorthern Limit Line) 문제를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6ㆍ29 서해교전은 북의 기습선제공격으로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피해 당사자인 군 당국 조차도 이 필요성에 내심 동의하고 있다. NLL문제를 계속 방치할 경우 1999년 연평해전이나 이번 서해교전처럼 남북간 충돌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 때문이다.
▽NLL의 태생적 한계
‘남북 화약고’인 NLL의 역사는 1953년 5월27일 정전협정때로 올라간다. 당시 정전협정에서는 남북간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은 설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던 클라크(Mark Wayne Clark)는 같은해 8월30일 서해도서에서 병력을 철수하면서 해상충돌을 막기 위해 백령ㆍ대청ㆍ소청ㆍ연평ㆍ우도 등 서해5개 도서를 포함한 바다의 경계선인 현재의 NLL을 임의적으로 설정, 북한에 통보했다.
이 때문에 NLL은 국제법적으로도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것이 국제법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는 하지만, 당시 북한은 유엔사 통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묵시적으로 인정해왔다.
북한은 59년 조선중앙연감 황해도 지도에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73년 12월 돌연 NLL을 문제삼고 나섰다. 서해5개 도서를 포함시킨 영해법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 “서해5개 도서 자체는 정전협정에 명기된 대로 유엔군 통제하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도서 주변 수역은 북한의 관할이기 때문에 사전승인을 받아 통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해상 NLL은 육지의 군사분계선(MDL)의 연장선 성격이 강해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비극의 역사 NLL
이후 북한은 서해5도 인근에 배치돼 있는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행위라고 줄기차게 비난했고, 의도적으로 NLL 남쪽으로 경비정 등을 월선시켜 왔다. 90년대 들어서는 경비정과 어선을 포함해 연평균 15회 이상 NLL을 침범했다. 99년 6월에는 연평해전이 터져 무력충돌으로 이어졌다.
이후 북은 99년 9월 △등산곶-굴업도 등거리점 △옹도-서격렬비도 등거리점 △한반도-중국 반분선과의 교차점을 ‘남북 서해 군사분계선’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2000년 3월에는 ‘서해 5도 통항질서’를 선포, 백령도(1항로)와 연평도(2항로)를 오갈 수 있는 해로를 직접 지정해주고 그 곳으로만 통항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북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교전이 발생한 지역을 포함, 서해5도 인근의 해역이 모두 그들의 영해인 셈이다. 북은 이번 사건 후에도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미군이 일방 설정한 경계선”이라는 북한과 “남북 쌍방이 지켜 온 실질적 해상경계선”이라는 우리측 주장이 한 치 양보없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 해결 가능성 열어둬
이번 서해교전을 NLL문제 해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3일 NLL남쪽 해상에서 해군 함정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꽃게잡이 어선들이 출항하고 있다. /연평도=최흥수기자
그러나 남과 북이 접점없는 대결만 해 온 것은 아니다. 남북은 92년 기본합의서에서 “양측이 합의해 해상 경계선을 확정지을 때까지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을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남북기본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NLL문제 해결을 위해 양측이 서로 협의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99년 연평해전 이후 6차례에 걸친 유엔사와 장성급 회담에서 “NLL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ㆍ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면서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 공동군사위원회를 연다면 NLL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전문가 사이에는 이제 서해교전의 상흔을 딛고 늘 ‘국경분쟁’ 소지를 안고 있는 NLL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피의 충돌을 막으려면 남북이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군사공동위를 개최하고 중단된 남북군사회담 등을 통해 해상분계선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거나 서해상에 공동조업구역을 설정해야 한다 등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앙대 법대 제성호(諸成鎬) 교수는 “우선적으로 일부 서해를 공해로 만들어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며 “북이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 스스로라도 NLL 성격의 재조정과 평화적인 이용에 대한 입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97년 첫 교전…99년·올해 인명피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간의 충돌은 북한이 서해 5도를 북측 수역에 일방적으로 포함시킨 1973년 이후 끊이지 않았다.
해군력이 열세였던 북한은 73년 체코제 스틱스미사일을 장착한 소련제 미사일 보트를 도입하면서 노골적으로 NLL을 침범해왔다. 서해 NLL에서의 남북 교전은 97년 6월 경비정간의 함포사격전, 99년6월의 연평해전, 그리고 이번의 서해교전이 대표적이다.
97년 6월5일에는 북한 경비정 1척이 북한 어선 9척과 함께 연평도 서쪽 12.9㎞ 해상에서 NLL을 침범, 우리 해군 고속정 3척과 함포사격을 주고 받았다. 해군 고속정이 북 경비정의 남하를 막기위해 900㎙까지 접근하자 북경비정은 우리 고속정의 선미부분에 3발의 함포사격을 가했다. 해군고속정도 즉각 2발의 함포로 응사했다. 북 경비정과 어선들은 해군 고속정과 50여분간의 대치끝에 퇴각, 양측의 피해는 없었다.
99년 6월15일, 연평도 앞 바다에서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으로 야기된 남북 함정의 대치는 결국 교전으로 비화했었다. 우리 함정이 북한 함정을 NLL밖으로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등 사흘째 긴장이 계속되다 북한 함정에 있던 사병들이 먼저 총격을 가하고 북 어뢰정이 25㎜포로 우리 해군 고속정을 공격했다.
해군 고속정도 곧바로 40㎜포로 응사하고, 초계함도 76㎜함포 공격을 시작했다. 45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측은 심각한 피해를 당하고 퇴각했다. NLL을 침범한 북의 17인승 어뢰정 3척 중 1척이 침몰하고 다른 1척도 대파됐으며, 퇴각 과정에서 경비정 2척도 크게 파손됐다. 북한 군은 연평해전에서 20여명이 사망하고 수십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경비정은 3년후인 지난달 29일 연평도 부근 NLL을 침범, 해군 고속정에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교전이 벌어져 양측이 또 큰 피해를 입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전문가의 견해
△ 허남성(국방대교수)
NLL은 역사적으로 미묘한 지역이다. 육상과 달리 북은 NLL이 합의된 선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NLL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자꾸 침범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연평해전에도 불구하고 남쪽은 군사적 문제와 비군사적 문제를 분리, 군사적 충돌이 벌어져도 대북경제협력은 지속해왔다. 군사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도발이 있을 경우 경제 및 외교적으로 잃는 것이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북 민간교류 등을 한시적으로 중단시켜 북한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도록 해야 한다.
△ 송영대(宋榮大.전 통일부 차관)
서해교전은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대해 선제공격을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조선반도 평화보장을 위해 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북미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입장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현 정전협정의 문제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고, 대표적인 사례인 NLL문제를 물고 들어간 것이다. 북한은 남측의 선제 공격을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북한에 햇볕만이 아니라 바람도 보내는, 즉 협력과 견제를 조화시키는 선택적 포용정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 한용섭(韓庸燮.국방대학원 교수)
북한의 군사위협을 평가함에 있어 남북관계의 정치적 수사로 그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NLL 무력화에 대해 강력한 응징을 가하기 위해 정전시 교전규칙을 시대에 맞게 교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 북한 당국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말로만 주장하지말고 단계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제재방법을 강구, NLL 준수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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