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종군기자 필립 깁스 경(卿)은 “모든 전쟁에서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한다”고 갈파했다.후방에 편히 앉은 정치인과 군인과 언론인들이 애국적 웅변과 논설로 전쟁을 부추기고, 어린 병사의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희생을 온갖 수사(修辭)로 찬양하는 행태를 욕한 것이다.
또 다른 분쟁보도 전문기자 마사 겔혼은 “전쟁의 변함없는 진실은 전투 스펙터클 아닌 희생자들의 참상에 있다”고 말했다.
작가 헤밍웨이의 부인이었던 그는 이 참상을 충실히 전하는 것이 진정한 진실 보도, 언론의 사명이라고 외쳤다. 전쟁 대신 평화의 이상을 좇아야 한다는 충고다.
분쟁 지역에 뛰어들어 ‘전쟁의 진실’을 전하려 애쓴 언론인들의 충고를 세상이 늘 귀담아 듣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 수행자들과 애국적 언론이 전파하는 고상한 전쟁 목적에 현혹되고, 이웃과 내 아들의 죽음마저 나라를 위한 헌신으로 포장하는 선전에 휘둘린다.
그 희생이 참된 평화의 계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지극한 비통마저 느끼지 못하는 비극도 있다.
이런 전쟁의 비극적 속성을 추적한 대표적 연구 사례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 관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최대 해전(海戰)이 벌어진 이 전쟁은 아르헨 군사정권이 1833년 영국에 빼앗긴 남대서양 포클랜드 군도를 전격 점령한 것이 발단이다.
실정(失政)과 경제난에 따른 정권 위기를 애국적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군사 모험으로 타개하려는 시도였다.
영국에서 무려 1만5,000㎞ 떨어진 황량한 섬 포클랜드에 걸린 영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은 별로 없었다. 영국민 다수도 그렇게 인식했다.
그러나 대처 총리의 보수당 정부는 낡은 영광의 유산인 포클랜드섬 탈환을 국위를 높이고 보수 드라이브에 힘을 보탤 호기로 보았다. 이에 따라 여러 중재안을 뿌리치고 대규모 원정함대를 띄웠다.
영국은 포클랜드 주변에 선포한 전쟁수역의 해상봉쇄 만으로 아르헨의 타협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처 전쟁 내각은 전쟁수역 바깥에서 본토로 피해가던 아르헨의 낡은 순양함 벨그라노 호를 핵잠수함 어뢰로 격침, 승조원 1,082명 중 300명 이상을 수장시켰다.
원정함대의 교전수칙조차 몰래 고쳐 단행한 이 공격에 아르헨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대처 정부와 보수진영은 단호한 전쟁 의지와 해상봉쇄의 위력을 과시한 것에 즐거워했다.
국민의 55%도 여론조사에서 “필요하다면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섬을 수복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각성은 이내 찾아왔다. 불과 이틀 뒤 원정함대의 구축함 쉐필드가 아르헨 공군의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에 맞아 침몰, 승조원 30명이 희생됐다.
이어 구축함 코벤트리와 아던트가 잇달아 피격, 수십 명이 전사했다. 이 때 전몰 장병 어머니들의 반응부터 달라졌다.
쉐필드호 승조원의 어머니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으나, 코벤트리호 승조원의 어머니는 “쓸모없는 전쟁에 희생하러 군에 간 건 아니다”고 울부짖었다.
영웅적 희생을 부각시키기 위해 친지까지 인터뷰하던 언론도 슬며시 유가족 보도를 중단했다.
앞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3%가 포클랜드를 유엔 관할에 두는 협상안을 지지했고, 희생자가 생긴 뒤에는 76%로 늘어난 사실을 보수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것이 뒷날 언론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서해 교전도 비록 주변 사정은 다르지만 역시 냉엄한 진실은 어린 병사들의 희생에 있다.
북방한계선(NLL)과 꽃게잡이를 둘러싼 논란, 햇볕정책과 교전규칙 등에 관한 시비가 분분하지만 무엇보다 동족상잔의 악행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참담하게 여겨야 한다.
3년 전 연평 해전 때 북한 수병 수십 명을 살상한 승리에 무심코 박수쳤지만, NLL과 꽃게 어장 문제를 국제법과 관행을 좇아 타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 과제를 미룬 채 우리끼리 다투다가 비극을 맞은 마당에, 다시 강경론을 외치는 고루(固陋)한 늙은이들은 이제 정말 다음 세대를 위해 무대에서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병태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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