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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티 월드컵칼럼] 한일월드컵은 이미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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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티 월드컵칼럼] 한일월드컵은 이미 역사이다

입력
2002.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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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미래의 발전을 위해 유용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때 가치를 지닌다. 한일월드컵은 그런 의미에서 이미 역사이다.’아르헨티나의 작가 에스테반 에체베리아가 남긴 이 구절은 축구는 물론 한일월드컵의 의미를 검토하기 위해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로서의 축구에 가치를 부여하는 월드컵의 변화는 심도있는 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 변화는 각각의 팀들에게 월드컵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토록 하는 힘을 준다.

선수들은 가장 축하를 받아야 할 시기에 각국 리그에 지쳐버렸다. 정작 월드컵서 기량발휘를 못하는 선수들의 비극을 막기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과 각국 축구협회의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 나는 국적에 관계없이 최선의 심판을 선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오심은 허용기준을 초과했다.

몇몇 팀들의 태도를 되돌아보자. 무엇보다 터키,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 축구의 바람을 몰고 온 세네갈은 신선함을 잃지 않았다.

스페인은 여전히 만성적인 의문을 보여주었지만 4년전보다 훨씬 나은 축구를 구사했다. 잉글랜드는 40년동안 해왔던 것처럼 실망스럽게 고국으로 돌아갔다.

남아공과 파라과이, 우루과이는 지도자에게 부과된 무질서의 대가를 치렀다. 에콰도르는 첫 출전국의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낭만이 유약함의 증거라 여기는 실용주의를 신봉하다 희생된 팀들도 있었다. 이탈리아는 그들이 실용적이라고 여겼지만 어떠한 감정도 보여주지 못했고 승리하지도 못했다.

멕시코와 코스타리카는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멕시코는 8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들은 스텝을 멈추지 않았고 코스타리카도 그들만의 좋은 스타일을 유지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는 어떠한 범주로도 분류될 수 없다. 나는 프랑스가 축구에 대한 비전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역시 자신을 추스려야 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독일과 브라질은 혹평에 시달렸지만 최소한의 기량만을 과시하며 결승에 올랐다. 브라질에겐 감정을 휘젓던 드리블이 보이지 않았다. 브라질 축구에는 삼바가 아닌 테크노, 디스코 뮤직만이 넘실댔다.

그러나 그들은 선수들을 만들어내는 유전적 능력 덕에 결승에 올랐다. 독일은 천부적인 압박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베켄바워가 없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결승에는 미하엘 발라크도 없었다.)

결국 챔피언은 탄생했고 결승을 통해 ‘힘은 지능과 결합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브라질은 전반 내내 볼 소유면에서 축구를 하지 않았던 대가를 치렀다.

선수들의 조직력은 엉망이었다. 독일은 창조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효율성을 잃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후반 시작 15분 동안에도 경기는 가볍게 진행됐다.

그러나 올리버 칸의 실수 덕에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기법을 선보이던 브라질은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그 골을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그러한 찬스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들은 히바우두와 호나우두가 월드컵을 거머쥐는 결승골을 합작하기 전까지 이탈리아식 스타일에 의존했다.

독일은 항상 전통과 역사에 충실했지만 결국 챔피언에게 필요한 뭔가를 지니지 못했고 브라질은 그들이 지닌 유산의 마력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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