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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유종호 '다시 읽는 한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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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유종호 '다시 읽는 한국 시인'

입력
2002.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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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이 난에서 반칠환씨의 시 세 편을 읽으며, 기자는 그의 시 ‘밤을 치며’가 다소 불명료하다고 썼다.기자는 그 대목에서 “‘밤을 치며’는 밤에 모기를 잡기 위해 벽을 친다는 뜻일까?”라는 엉뚱한 물음을 던졌는데, 독자 한 분이 기자의 무지를 일깨워주었다.

그 분의 가르침을 받고서야, 기자는 동사 ‘치다’에 ‘칼날을 뉘어 거죽을 얇게 저미어 깎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밤을 치다’는 어두운 밤(夜)이 아니라 먹는 밤(栗)에 대한 언급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시는 모기에 관한 시가 아니라 밤벌레에 관한 시였다.

앞의 시 두 편이 모기를 소재로 한 것이어서 세번째 시 역시 그러려니 하는 편견으로 작품을 대하다 보니, 기자의 가난한 한국어 어휘력에는 의심이 미치지 못했다.

가르침을 주신 분께는 고마움을, 시인과 독자들께는 죄송함을 전한다. 앞으로 국어 공부에 정진하겠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의 ‘다시 읽는 한국 시인’(문학동네 발행)을 읽는다. 기자의 독서 체험 안에서 유종호씨는 최고의 ‘시 읽어주는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임화, 오장환, 이용악, 백석 네 시인은 6ㆍ25전쟁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남쪽 독자들이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월북 또는 재북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유종호씨는 이 시인들의 세계에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들이댄다.

독자들은 그의 안내에 따라 이들이 20세기 한국 문학사의 공간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에 더해, 북쪽에서 쓰여진 작품까지 포함해 몇몇 시편들을 꼼꼼히 읽을 수 있다.

유소년기 이래의 탐욕스러운 시 독자이자 갑년을 넘어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유종호씨의 시 읽기는 자상하면서도 엄정하다.

네 시인의 작품들 가운데 그의 까다로운 감식안을 만족시켜주는 시는 많지 않지만, 평자는 서툰 작품들까지도 당대의 문학적ㆍ사회정치적 맥락을 고려해 어루만져 주려고 애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유종호씨의 혜안이 아니라면 도달하지 못했을 몇몇 문학적 판단에 즐겁게 공감하게 된다.

임화의 시나 산문이 동시대 문인들에 비해 덜 단단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를 한문이나 한시에 대한 교양의 부재에서 찾는 것이 한 예다.

이용악의 ‘오랑캐꽃’의 도입부(“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를 식민지 시절 조선 민중에 대한 비유로 읽는 기존의 해석을 정정해 그것이 고려시대 여진족의 패주를 묘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하는 대목도 그렇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는 것은 특정한 시인이나 시 작품에 대한 교양이 아니라 시를 편견 없이 읽는 법인 것 같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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