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해교전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목은 북한의 의도성 여부다. 단순히 북측이 의도를 가지고 도발했느냐, 안 했느냐를 점검하는 게 아니라, 의도가 있었다면 그것이 어느 수준인지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구체적으로 함정들의 우발적 교전이었는지, 북측 서해 함대 수준의 의도적 작전이었는지, 군부 내 강경그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아예 김정일(金正日) 위원장 등 평양 수뇌부의 계획이었는지를 따져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명확한 결론은 유보하고 있다. 나름대로 정보 채널과 상황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판단은 내리고 있지만, 이를 공식화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대북 채널을 통해 북측에 “판을 깨자는 의도냐, 아니면 우발적 사고냐”고 물었고 북측은 이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여러 차례 분쟁 때에도 북측은 경위 설명을 한 예는 없다.
그러나 정부는 여러 정황을 따져볼 때 김 위원장 등 평양의 수뇌부가 남북관계의 틀을 깨기 위해 계획적으로 도발한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치밀한 시나리오를 갖춘 도발이었다면, 북측의 후속 조치들이 강한 색채를 띠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의 유화적 제스처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측이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난 29일 브라질_ 터키전을 방영했고 1일에는 한국_터키전, 한국_독일전을 편집해 60분간 방영한 사실은 강경한 기류와는 거리가 있다.
또 금강산 관광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시키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북한에 들어간 남측 인사들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고 있다. 아울러 북측이 정몽준(鄭夢準) 월드컵 조직위원장에 월드컵의 성공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낸 것도 유화적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평양 수뇌부가 교전에 개입하지 않았거나, 사전에 알았다 해도 자신들의 기획이 아닌 군부의 의견에 마지못해 동조한 수준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경우 북측이 노리는 바는 북미대화를 앞두고 협상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치고 빠지기’식의 도발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추측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군부 내 강경그룹이나 현지 함대사령부 차원의 작전이었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측이 확성기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중계해 주고 우리 팀이 골을 넣는 순간에 북측 사병들이 환호하는 상황에 군 수뇌부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도 참조할 대목 중 하나다.
아울러 3년 전 ‘연평 해전’의 패배에 대한 북측 서해함대의 뿌리깊은 ‘원한’이 작용했을 개연성도 있다. 정부는 이런 점으로 미루어 군부 내 강경세력이나 서해 함대 차원의 의도적인 작전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지 함정의 우발적 도발로 보는 시각은 별로 많지 않다. 85mm 기관포를 조준해서 쐈다는 것은 분명 의도성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정부는 나름대로 판단과 분석을 하면서 미국과도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멀지 않은 시점에 종합적인 판단과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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