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하늘마저 우릴 외면하는 건가요….”서해교전 발발 나흘째인 2일 서해5도에는 대청도 남방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교전 이후 처음으로 조업이 허용됐지만 해무(海霧)로 출항을 못하게 되자 어민들은 넋나간 표정이었다.
새벽까지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라며 조업 준비에 분주하던 어민들은 조업이 허용된 오후 1시가 넘어서도 안개가 걷히지 않자 속속 출항을 포기했다. 어민들의 얼굴도 수심 가득한 흙빛으로 변했다. 결국 이날도 연평도 60여척, 대청도 80여척, 백령도 50여척 등 모두 190여척이 발이 묶였다.
■ ‘해무’로 또 좌초된 출항의 꿈
금어기(禁漁期ㆍ7, 8월)지만 조업이 허용될 지 모른다는 소문이 전날 밤에 돌자 연평도 어민들은 밤잠을 설쳤고, 새벽 5시께부터 부두로 나가 조업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주민들은 교전 충격에서 채 헤어나기도 전에 해무로 시야가 가리고 태풍소식까지 전해지자 망연자실했다.
해일 2호 선장 김통일(36)씨는 “오늘 나가도 그물에 걸려있던 꽃게의 절반은 죽어있을 텐데, 이제 썩은 꽃게만 건져 올리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군 장병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군대 가 있는 큰 아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수진호 선장 박영철(44)씨는 “올 꽃게농사를 완전히 망쳤는데, 자녀 학비와 선박 유지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며 시름에 잠겼다.
주민 김규환(40)씨는 “귓가에는 총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은 데, 해무가 밀려오고 곧 태풍까지 온다니 마치 저주를 받는 기분”이라며 “마을 인심 마저 흉흉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포구에는 출항을 기대하다 낙담을 한 선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였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일부 선원들은 어선 주위를 자꾸 맴돌기만 했다.
지난 해 가을부터 꽃게잡이 어선을 탔던 선원 신창규(38ㆍ경기 부천시 소사구 신곡동)씨는 “돈 벌이가 영 신통치 않아 계약기간이 끝나는 이달 말에는 새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인천으로 떠나야겠다”며 연신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 전사장병 넋 기린 고사리손들
그러나 섬 전체가 낙담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교전 후 첫 등교에 나선 연평초등학교 전교생 77명은 이날 정규수업 대신 추모 장병에 대한 글짓기로 하루를 보냈다. “해군 경비정에서 근무하는 아버지가 어제 사고 후 나흘 만에 전화를 했다”는 1학년 박민선(8)양은 “아버지가 건강하다는 소식을 듣고 힘이 난다”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3년 만에 마을 앞 교전에 대한 경험을 다시 한 학생들은 ‘우리 마을을 지키다 희생당한 군인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교전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등 소망 하나 하나를 종이에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
담임교사 박문선(朴文鮮ㆍ55)씨는 “어업종사자, 군인 등 학부모의 90% 이상이 서해교전과 무관할 수 없는 사람들이어서 학교 분위기가 하루 종일 숙연했다”라고 전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