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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뿔'낸 신경림 시인 "이젠 툭툭 털고 가볍게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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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뿔'낸 신경림 시인 "이젠 툭툭 털고 가볍게 걷고 싶다"

입력
2002.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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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이 살고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2동의 아파트는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들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이다.푸른 빛이 짙어진 잎사귀 때문인지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나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호흡은 생명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종종 호흡한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기 쉽다. 나무들의 호흡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신씨는 “나는 요즈음 시(詩)라는 것이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나무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영영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도 나무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시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나무를 심는 것처럼 시를 심는다고 했다.

신경림씨가 여덟번째 시집 ‘뿔’(창작과비평사 발행)을 출간했다. 4년 만이다.

새 시집에는 “살아가면서 내가 모르는 게 있구나, 라는 담담한 깨달음이 담겼다”고 시인은 말한다.

67세인 그는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그는 이제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들 모두/ 땅거미 속에 묻으면서.’(‘집으로 가는 길’).

먼 길을 오래도록 타박타박 걸어왔으니 한숨 돌려도 좋다. 논두렁에 발을 들여놓고 샛길로 빠져봐도, 걸어온 길을 몸이 기억해내고 제자리를 찾아준다.

그러니까 잠시 잠깐 ‘돌아가길 단념하고 낯선 처마 밑에 쪼그려 앉자/ 들리는 말 뜻 몰라 얼마나 자유스러우냐’(‘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그가 아끼는 시편 중 하나인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는 수년 전 부산 가는 길에 씌어진 것이다. 부산행 열차 안에서 퍼뜩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씨는 대구에서 훌쩍 내렸다. 그곳에서 하루를 느긋하게 보냈다.

‘복사꽃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 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쯤 술로 지새면서/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나무 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은 ‘시의 위기’라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엄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수준 높은 문학을 향유한다는 프랑스에서도, 우리나라에 제대로 작품이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에서도, 시의 힘과 지위는 저마다 다를지언정 어느 곳이나 ‘시는 좋은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중국의 두메산골에서 촌부를 만난 적이 있다. 시를 한 편도 읽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시란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시인은 시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TV 프로그램 ‘!느낌표’가 선정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신씨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그가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작고시인 22명의 고향과 유적을 답사하면서 작품세계를 헤아린 산문집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대다수 독자인 월간 ‘우리교육’에 연재한 것을 묶어 4년 전 펴낸 이 책은 그간 2만부 정도 판매됐던 것이 올 5월 한 달 동안 방송이 나간 뒤 20만부가 넘게 팔렸다.

뒤늦은 대중적 인기몰이에 대해 그는 말을 아낀다.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을 시인과 가까워지도록 하는 순기능을 담당했다는 데 의미를 두는 쪽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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