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월드컵 보너스 휴일을 한껏 즐기고 있던 1일 오전. 평시에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는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은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서해교전에서 청춘을 바친 장병 유해 4구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오자 일부 유족은 오열하다 넋을 잃었다. 관을 부여잡고 “못 간다”고 울부짖는 어머니, 정신이 나간 듯 식장 밖으로 뛰쳐나간 20대 미망인…. 눈시울을 닦는 노병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조사, 추도사, 헌화, 종교의식, 조총, 묵념 순으로 이어진 장례식은 그러나 매우 쓸쓸해 보였다. 참석 조문객은 700여명.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조의를 표했고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도 그들의 마지막을 숙연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게 전부였다. 장정길(張正吉) 해참총장 보다 ‘높으신’ 군 수뇌부나 국무위원, 정치인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전 전 대통령이 범정치권 대표로 참석한 건 가요”라는 비아냥이 조문객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기 까지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국방부 측의 해명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국무총리 등이 전날 조문했고, 해군장(葬)이기 때문에 장례위원장(해군참모총장) 보다 높은 국무위원과 군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자 격식”이라는 것이 요지.
순간, ‘관례, 격식’이라는 말에 생각이 멈췄다. 전사한 장병들은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는 데도 분을 달래며 “먼저 쏘지 말라”는 ‘관례, 격식’(교전규칙)을 지키다 저 세상으로 갔다
. 그들은 이제 말이 없다. 그러나 ‘관례, 격식”이란 얘기는 그들의 영면(永眠) 마저 가로막을 것만 같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월드컵 성공 국민대축제'가 열린 이곳에는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들이 '관례,격식'인양 상당수 나와 보통시민들 처럼 축제의 환희에 흠뻑 도취됐다.
최기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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