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출가 권오일(71)씨가 연극 인생 40년 기념작 무대로 테네시 윌리엄즈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준비하고 있다.1969년 그가 창단해 이끌어온 극단 성좌가 6~17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린다.
미국 현대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아서 밀러 작 ‘세일즈맨의 죽음’과 더불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언어의 미학자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영롱한 시정이 풍기지요. 극적 구성 뿐 아니라 인물 설정이나 성격 묘사도 뛰어나 연출 의욕을 부추깁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섬세한 부분까지 차곡차곡 챙겨서 리얼리즘 연극의 재미를 듬뿍 전하려고 합니다.”
그의 연극 인생은 반세기를 헤아린다. 대학 1년 때인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청문극회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중간에 개인 사정과 극단의 재정난으로 연극 활동을 쉰 공백기 10년을 빼면 40년 쯤 된다.
전공인 교육심리학으로 서울시립대에서 97년까지 30년 넘게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연극을 계속해왔다.
“교수 월급의 3분의 2는 극단에 넣고 집에는 ‘하숙비’로 3분의 1을 갖다 줬으니 아내가 고생 많이 했죠. 연극 배우들 보면 다들 어떻게 먹고 사는지 기적 같아요. 1년 내내 출연 한 편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생계가 막막한데도 연극을 버리지 않으니…. 연극이란 게 중독성이 있어서 좀처럼 발을 뺄 수 없거든요. 그게 연극이 버티는 힘이기도 하지요.”
평생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해온 그는 최근 유행하는 고전 해체 작업에 우려를 표시한다.
“해체의 이름으로 명작이 난자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연출가 취향에 따라 엉뚱하게 변질되는 거죠. 재해석이나 실험을 하더라도 원작의 작품성을 훼손하면 안되는데. 다행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워낙 정교해서 아무도 건드린 사람이 없습니다. 이번 무대도 원작에 충실하게, 철저히 리얼리즘 수법으로 연출할 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블랑쉬는 온실 속의 꽃처럼 곱게 자랐지만 집안의 몰락과 악몽 같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영혼이 황폐해진 채 성적 욕망을 좇다 무너져버리는 여인이다.
짐승 같은 한 남자의 힘에 짓밟혀 스러지는 블랑쉬의 운명은 문명과 본능 혹은 꿈과 현실의 비극적 충돌로 해석되곤 한다.
이번 공연에는 TV와 연극을 오가며 활동 중인 매력적인 여배우 양금석, 올 봄 서울시립극단의 ‘크루서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강신구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 탄탄한 앙상블이 기대된다. (02)762-0010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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