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고사리 손마저 햇빛에 잔뜩 그을린 연평초등학교(인천 옹진군 연평도) 5학년 박슬기(12)양은 3년 새에 2번이나 마을 앞 바다에서 남북한이 서로 총을 겨눴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1999년 6월 ‘연평해전’ 때 외지 사람들이 잔뜩 몰려왔던 기억을 떠올린 박양은 “전쟁은 싫어요. 할머니와 사이 좋게 꽃게를 따게 내버려 두세요”라며 할머니 품에 안겼다.2살 때인 92년 어머니가 뭍으로 떠나고, 아버지마저 어머니를 찾겠다며 나가 버려 슬기양은 할머니 김옥선(68)씨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런 슬기 양에게 전쟁은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슬기양 가족의 유일한 돈벌이는 꽃게잡이 어선들이 연평도 내항 방파제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꽃게를 따는 일. 시간당 5,000원씩, 한달 수입은 고작 10만~20만원. 할머니는 “올해는 꽃게조업이 신통치 않아 10만원 이상을 벌어본 적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3만5,000원이 없어 손주 딸 학교 급식료를 내지도 못했고, 또래 아이들이 전부 다니는 피아노학원도 보내지 못한 게 못내 서럽다. “학원은 못 보내더라도 참고서라도 사줘야 되는데, 이런 일까지 터지니….” 할머니는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와 함께 꽃게를 따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슬기양은 조업이 재개돼 다시 방파제로 나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연평도=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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