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멕시코대사를 끝으로 35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끝낸 구충회(74)씨는 요즘 ‘기공수련의 전도사’로 불린다. 30여명의 퇴직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매주 기공을 지도하고 있는 그는 “늙어서 건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그가 기공을 시작하게 된 것은 7년 전 갑자기 아내를 잃고난 뒤. 혼자 살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그는 기공을 통해 건강도 회복하고 외로움도 극복하게 됐다.≫
1996년 설날, 미국에 있는 자녀들과 전화로 덕담을 주고받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119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아내를 가까스로 옮겼으나, 아내는 4시간 만에 어이없이 내 곁을 떠나갔다. 평소 병원신세를 진 적이 없던 사람이라 충격은 너무 컸다.
2남1녀는 모두 출가해 외국에서 살고 있었고, 아내와 단란하게 노후를 보내던 터라 그의 빈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만큼 컸다. 장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파트 문을 차마 열 수가 없어 한참 문 밖에 서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내가 웃으며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았다. 허탈감과 우울증에 시달린 데다 평생 해본 적이 없던 식사준비와 청소를 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하루 세끼 식사를 근처 식당에서 사 먹었는데 자연히 건강도 나빠지고 재미도 활력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산대 초빙교수로 특강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우연히 열차 에서 다른 사람이 두고 내린 시집을 들춰보게 됐다. 노산 이은상선생의 ‘인생’이란 시였다. ‘차창을 내다볼 땐 산도 나도 다 가더니/차에서 내렸을 땐 산은 없고 나만 있네/산두고 나 홀로 감이 인생인가 하노라…’
나는 이 시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은 나 스스로 꾸려나갈 수 밖에 없다고 느꼈고 용감하게 홀로 서리라 다짐했다. ‘늙어서 자식 앞에 몸져 눕지 말아야겠다’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는 쪽보다는 건강한 아비가 되는 편이 더 나으리라’고 마음을 다그쳤다.
마침 기공을 권하는 분이 있어 즉시 도장을 찾아가 그날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기공은 마음과 육체의 운동이다. 마음과 몸은 하나로 마음이 움직여야 몸도 움직인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장을 다니면서 수련을 했다. 천일기공을 중심으로 태극권 국선도 천도선법 등 다양한 기수련법도 배웠다.
이렇게 노력을 하다 보니 점차 내 몸에 기가 열리면서 우울증이 점차 사라졌다. 나는 기공이 나이든 사람에게 딱 맞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기운동은 일반적인 육체운동과는 다르다. 일반 운동은 하면 할수록 열을 밖으로 발산하면서 에너지가 소모돼 호흡이 가빠지고 피로를 느끼게 되지만, 기운동은 수련을 하면 할수록 기가 축적돼 힘이 솟아나고 몸이 가벼워진다.
이 운동을 하면 많은 피하 노폐물이 땀과 함께 끈적끈적하게 손바닥이나 온몸으로 빠져 나온다. 이렇게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난 뒤에는 피부가 맑고 부드러워진다. 땀이 나면서도 호흡이 가빠지지 않으므로 아무리 수련해도 폐와 심장에 부담이 가지 않는 특수한 운동법이다. 특히 기수련에서 중요한 참선은 노인들의 잡념을 없애주는 마음의 운동이다.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과거의 많은 일들이 회한으로 남아 마음을 짓누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무아지경에 빠지기가 어렵다.
나는 참선을 할 때면 20, 30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 자신의 행동을 분석하고 잘못을 찾아낸다. 이렇게 마음의 업을 풀고 참선에 빠지면 시간이 물 흐르듯이 지나면서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수련에 대한 나의 예찬은 고려수지침 최면술 등을 공부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기운동을 통해 건강을 다스리고 있다는 얘기가 옛 동료들에게 알려지면서 ‘우리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 기수련 모임을 만들면서 내가 내세웠던 조건이 “12명 이하로 회원이 줄어들면 모임을 중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서울 서초동에 자리잡은 서울외교협회 건물에서 매주 월요일 1시간 씩 수련을 하고 함께 점심을 하는 모임이 벌써 1년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진행 했는 데 점점 회원 수가 불어나 이제는 30명에 이르고 있다.
회원들도 모두 열심이다. 나는 이렇게 출석률이 높은 것은 바로 기수련을 통해 모두 건강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보람을 느낀다. 내가 회원들에게 “건강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건강관리에는 우등생보다 개근생이 되야 한다” 고 늘 강조한다.
발군의 테크닉과 체력을 길러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데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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