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골짜기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자리잡아 일과가 더딘 곳.사람들이 나누는 정분의 전염이 약한 대신 산과 물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자연스레 배어드는 곳. 조선시대 문인 김시습의 ‘금오신화’부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에 이르기까지 강원도의 정서가 스며든 작품은 우리 문학의 귀한 한 줄기를 이루었다.
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가 주최하는 ‘작가와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이 6월 29일 강원도 화천과 춘천에서 열렸다. 작가와 그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 80여 명이 떠난 길에는 소설가 송기원(55) 이경자(54) 시인 신동호(37) 김선우(32)씨 등이 함께 했다.
소설가 오정희(54)씨가 화천의 파로호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로호는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 때문에 생겨난 인공 호수다. 1988년 가을 어느날 평화의댐 기초공사를 위해 물을 뺀 퇴수지(退水地)에서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내 문학적 언어가 막혀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고, 80년대라는 시대적 압박감에 짓눌렸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바닥을 드러낸 호수의 황량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신문에서 보았다. 호수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오정희씨는 돌아본다.
그렇게 씌어진 오씨의 단편 ‘파로호’에는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화자 혜순을 사로잡은 ‘텅 빈 충만함’은 작가 자신의 느낌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혜순이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찾아냈던 인간의 위선, 역사에 대한 몰이해, 수몰지구 주민들의 안타까운 심정 등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파로호의 물결에 섞여 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강원도에 자리잡던 때였다. 파로호에서 존재의 유한성을 보았다”는 오씨의 설명에 독자들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화천에서 1시간 여 떨어진 한 간이역 앞에는 부채꼴로 펼쳐진 마을이 있다. 춘천 신동면 증리,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이다. 소설가 전상국(62)씨의 장편 ‘유정의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다. 신남역 앞에서 만난 전상국씨는 김유정의 생가 터로 독자들을 안내했다.
김유정의 작품에 푹 빠져서 소설로 쓴 김유정 작가론인 ‘유정의 사랑’을 발표한 전씨다. 그는 ‘동백꽃’ ‘산골 나그네’ 등 김유정의 문학 세계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유정이 기녀 박록주를 병적으로 짝사랑했던 것은 젊은 청년에게는 안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창작에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라는 전씨의 말에 독자들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근 금병산을 10분쯤 올라가면 산국농장이 나온다. ‘유정의 사랑’의 한 배경이기도 한 산국농장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진돗개 금병이가 짖고 있었다.
독자들은 작가와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듣는 것이 기쁘고 신기한 눈치였다.
강의가 끝난 뒤 참가한 작가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소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덕희(46)씨는 “오기 전에 ‘파로호’와 ‘유정의 사랑’을 읽었다. 작품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 육성으로 설명을 듣게 되니 더욱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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