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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 Out / 월드컵 함께 못했던 또다른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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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 Out / 월드컵 함께 못했던 또다른 우리

입력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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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 동안 영화계는 철 지난 피서지 같은 형국이었다. 영국 출신 거장 켄 로치의 영화 ‘빵과 장미’도 예외는 아니었다.그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빵과 장미’는 밀입국 환경미화원의 삶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월드컵 개막 직전인 5월 25일 씨네큐브에서 단관 개봉했다 1만 2,100명의 관객을 모으며 6월 27일 막을 내렸다.

영화는 멕시코에서 미국 LA로 밀입국해 청소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마야 자매를 보여준다. 관리자는 마야를 취직시켜 주겠다며 언니 로사의 몸을 뺏고, 마야의 첫 달 월급도 가로챈다. 청소 용역회사 ‘엔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한 것은 무관심과 냉대가 전부다.

영화는 마야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 마야가 악덕 고용주와의 싸움에서 이기고도 버스에 실려 멕시코로 쫓겨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을 때, 한국의 ‘마야’들과 임금을 가압류당한 발전 노조 노동자들의 탄식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영화 제목에서 ‘빵’이란 먹고 사는 일일 것이며, ‘장미’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품위를 뜻할 것이다. 둘 모두 인간에게 절실한 문제다. 월드컵의 흥분은 한국인이 이제껏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미’ 가운데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 동안 ‘빵’과 ‘장미’를 모두 함께 즐길 수 없는 이웃들도 있었다. ‘미싱’은 월드컵 기간에도 돌아갔다. 명동성당에선 파업 노동자들의 천막이 펄럭였다. 월드컵은 ‘모든 이를 위한 장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전 국민의 붉은 악마화’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번 응원열기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대로 ‘나 안에서 우리를 다시 발견하게 된 계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우리’ 속에 누려야할 장미를 아직 누리지 못하는 ‘우리’가 있음도 분명하다.

김지하 시인은 6월 29일 장준하 기념 사업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대~한민국 엇박자 응원’이 한국의 잠재적인 능력을 이끌어낸 중요한 ‘역사적 모멘트’라고 말했다.

한여름 열기보다 더 뜨거웠던 응원 열기를 ‘역사적 모멘트’로 삼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응원하지 못했던 ‘우리’들을 살펴볼 때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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