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했던 월드컵 기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분명 밝음이 있었다면 어두움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다면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오히려 불황을 겪었던 관광산업을 시작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로 월드컵이 남긴 자취를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본다.‘호사다마(好事多魔).’ 월드컵의 열광 속에서 우리의 관광업계가 겪은 것은 뒤의 두 글자이다. ‘특수’는 없었고 결과는 오히려 슬플 정도다. 외국인의 입국이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던 것은 물론, 국내여행 시장까지 완전히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 미래를 내다보면 앞에 있는 두 글자가 어른거린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전세계에 원 없이 알렸기 때문이다.
외형적인 결과부터 따져보자. 지난 해 관련기관이 예상했던 월드컵 기간 중 외국인 관광객 수는 64만 명. 그러나 올들어 예상은 계속 수정돼 54만 명으로 줄더니, 월드컵 직전에는 다시 45만 명으로 하향 조정됐다. 결과는 예상보다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최다 40만 명 정도가 찾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해 6월 방문객 46만 명에도 못 미친다.
호텔의 객실 투숙률만 따져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롯데호텔의 경우 투숙률이 지난 해 88%에서 69.6%로 18.4% 포인트 감소했고, 서울힐튼호텔도 13.2% 포인트 떨어졌다. 서울 P호텔의 홍보마케팅 담당자는 “처음에는 너무 올까 봐 걱정이었는데 나중에는 일대일 마케팅까지 펼치는 등 방을 채우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기대는 당초 우리의 잘못된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생각이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79만 매의 입장권이 모두 팔리고, 1인 당 모두 2.5경기를 관람할 것이란 분석이 예측의 토대였다.
가이드를 새로 채용하는 등 열심히 손님맞이 준비를 했던 K여행사의 H사장은 “입장권 판매에 너무 자신만만했고, 외국인이 낯선 땅에서 장거리를 돌아다니며 두 경기 이상을 관람할 것이란 예상도 안이했다”고 비판한다.
더욱 심한 것은 국내여행업계이다. 월드컵 기간에 국내 여행상품 이용객이 평소의 40% 수준이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이다. 계획했던 상품을 없애버리고 개점휴업을 해버린 여행사도 부지기수이다. 국내 답사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W여행사의 L사장은 “월드컵 기간 내내 배가 고픈 사람은 히딩크 감독 뿐만이 아니었다”고 한 달을 회고했다.
그러나 월드컵은 수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도 이루지 못할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한국의 매력을 전세계에 알렸다는 것이다. 정부 혹은 민간 주도의 홍보도 열심이었지만 특히 대회 기간 중 전세계의 언론은 대한민국을 ‘유혹적인 나라’로 홍보하는 데 두 손 두 발을 벗고 나섰다.
길거리 응원의 감동, 승패를 떠난 따스한 민족성, 아름다운 경관 등 그들의 타전한 기사와 사진을 통해 대한민국은 변방의 나라가 아닌 세계 속에서 가장 푸근한 나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이다.
D여행사의 L사장은 “한국의 관광산업은 외부의 충격에 약한 구조였다. 월드컵으로 인한 불황은 수도 없이 겪었던 외풍의 시련에 불과하다. 이제 휴가철도 다가오니 마음을 정리해 털고 일어나면 된다. 월드컵에서 보여 준 한국의 이미지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관광산업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망했다.
결실을 잘 거두기 위한 숙제도 만만치 않다. 한국 관광 산업의 최대 문제점은 인프라의 부족과 그리고 일이 끝나면 급격히 식어버리는 정부의 관심이다.
국제여행상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다국적기업 S여행사의 한국본부장은 “20여 년 여행업에 종사했지만 한국의 이미지가 이처럼 높아진 적은 없었다. 손에 쥐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은 바보”라며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의 관광 인프라 구축과 관광 산업에 대한 정부의 뜨거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앞으로 수십 년이 흘러도 ‘관광 한국’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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